남편 제자와 아파트서 밀회 즐긴 '마리 퀴리'… 시상식서 한 말 '충격'
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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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리 퀴리가 불륜 사건 후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 말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MBC에브리원 제공 |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리 퀴리가 불륜 사건 후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 말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4일 MBC에브리원 '리얼 커플 스토리-장미의 전쟁'(이하 장미의 전쟁)에는 마리 퀴리와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의 수제자 폴 랑주뱅의 불륜 스캔들이 공개됐다.
방송에 따르면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사별한 뒤 그의 수제자 폴 랑주뱅과 연인 관계를 맺고 근교의 아파트에서 밀회를 즐겼다.
퀴리는 랑주뱅에게 보낸 러브레터에 '아내와 이혼하는 법'을 비롯해 '더 이상 아내와 아이를 낳지 말 것' 등의 내용을 적어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편지를 본 랑주뱅의 아내 잔느는 퀴리에게 "8일 안에 프랑스를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라고 협박했고 결국 퀴리와 랑주뱅은 서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1911년 두 사람이 솔베이 학회에서 만나게 되자 잔느와 그의 가족들은 퀴리와 랑주뱅의 불륜을 신문에 폭로한다. 퀴리와 두 딸은 프랑스 국민의 지탄에 해외로 피신했다. 퀴리는 이 과정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로 신장에 병을 얻어 2년 동안 연구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퀴리는 랑주뱅과의 스캔들로 2번째 노벨상도 타지 못할 뻔했으나 주변의 만류에도 시상식에 참석했다. 퀴리는 "상은 과학자의 사생활이 아니라 업적에 주어지는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후 퀴리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나 랑주뱅은 아내와 3년 동안 별거 후 또다시 불륜을 저지른다.
추후 퀴리의 손녀와 랑주뱅의 손자도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올렸다. 이를 본 정다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손녀 손자가 이뤘다"고 감탄했다.
마리 퀴리는 1903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1911년에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다. 그는 계속된 방사능 연구 탓에 건강이 악화돼 방사선 피폭에 의한 악성 빈혈 등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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