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제10기 KB금융지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안건을 상정하는 동안 일부 주주들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제10기 KB금융지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안건을 상정하는 동안 일부 주주들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기사 게재 순서
① '168조 공적자금' 외환위기 잊었나… 高금리 이자놀이에 취한 은행들
윤 대통령, '은행 때리기' 배당성향 제자리걸음… 주주환원 딜레마
③ 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급브레이크…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 급물살



국내 금융지주가 금리인상 기조에 15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두면서 배당정책에 역대급 실탄을 쏟고 있다. 늘어난 대출 이자에 금융소비자들은 신음하는 반면 주주와 은행원들은 '돈 잔치'를 벌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공재 성격을 지닌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압박하며 공적 기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 금융지원과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는 현미경 검사를 예고한 가운데 은행들의 배당정책 등 주주환원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4조원 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확대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배당금액은 4조416억원으로 전년대비 8.3% 증가했다. 배당금액은 ▲2019년 2조8671억원 ▲2020년 2조2929억원 ▲2021년 3조7309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배당성향은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평균 배당성향은 25.5%로 전년(25.7%)보다 0.2%포인트 소폭 하락했다.

하나금융(27.0%)과 우리금융(26.0%)은 각각 0.4%포인트, 0.7%포인트 상승에 그쳤고 KB금융은 26.0%로 전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신한금융은 25.2%에서 22.8%로 2.8%포인트 낮아졌다. 금융당국이 자본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에 배당성향을 높이지 않은 탓이다.

윤 대통령, '은행 때리기'에 배당성향 제자리걸음… 주주환원 딜레마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는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해 배당을 확대하기보다 대손충당금 등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손충당금은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 등 다양한 손실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쌓아 두는 비용이다. 은행업 감독규정은 대손충당금과 대손준비금의 최소 합산금액을 대출 채권의 건전성 분류(정상 0.85%·요주의 7%·고정 20%·회수의문 50%·추정손실·100%)에 따라 산출한 금액의 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5조1033억원의 대손충당금(순전입액)을 적립했다. 2021년(3조2509억원)보다 약 57%(1조8524억원) 늘어난 규모다. 금융사별로 살펴보면 KB금융이 1조8359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으며 4대 금융그룹 중 가장 많은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신한금융은 전년보다 31% 늘린 1조3057억원을 쌓았고 하나금융도 1조1135억원으로 전년보다 109% 확대했다. 우리금융은 전년보다 58% 늘린 8482억원을 마련했다.


대손충당금이 늘어난 금융지주는 배당 성향을 유지한 채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통해 주주가치를 확대하고 있다. 금리 상승으로 예대마진이 늘어난 데 따른 이익을 주주환원에 돌린다는 취지다.

KB금융은 올해 3000억원을 자사주 매입·소각에 활용할 예정이다. 각각 1500억원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밝힌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추가 자사주 매입을 검토한다. 우리금융은 올 2분기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를 결정하기로 했다.

금융지주의 총주주환원율(배당+자사주 매입·소각)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배당성향이 낮다는 주주들의 볼멘소리에 자사주 매입·소각을 확대한 덕이다. 금융지주별 총주주환원율을 살펴보면 KB금융이 33%로 가장 높고 신한·우리금융은 30%, 하나금융은 27%다. KB금융은 전년보다 7%포인트, 신한금융은 4%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소각하면 배당과 같이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하는 효과가 있다"며 "수조원대 수익을 내면서 주주환원을 늘리지 않으면 배임이 될 수 있어 주주가치 제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저평가된 은행주, 금융당국 눈치 보기

금융권은 배당매력이 올라간 은행주의 가치가 살아날지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고 있다. 은행주 중심으로 보통주자본비율(CET1) 기준 주주환원이 커지고 있으나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가 주가 상승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통주자본비율은 은행이 보유한 자기자본 중 보통주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눈 비율이다. 실질적인 리스크를 반영한 위험자산 대비 보통주자본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윤 대통령, '은행 때리기'에 배당성향 제자리걸음… 주주환원 딜레마


위험가중자산이 줄거나 보통주자본이 늘면 수치가 커지는데 금융당국은 10.5%를 규제 수준으로 두고 있다. 금융지주들은 추가로 인수합병(M&A) 등에 필요한 자금을 포함해 2.5%포인트 높은 13%를 안정적인 수준으로 보고 있다.

연초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국내 상장한 7개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를 상대로 "배당을 확대하지 않으면 주주 행동에 나서겠다"고 공개서한을 보냈다.

국내 은행의 배당성향(20%)이 50%가 넘는 해외은행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은행주가 저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은행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0.5배 수준이다. PBR이 1보다 작으면 시가총액보다 회사 순자산이 많다는 의미로 보통 주가 저평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금융 대장주인 KB금융은 올해 첫 거래일인 1월2일 4만7600원에서 지난 14일 종가기준 5만3000원으로 5400원(11.34%) 올랐다. 같은 기간 하나금융은 4만6850원, 신한금융 3만9450원, 우리금융 1만2590원으로 연초보다 각각 6050원(12.91%), 5150원(13.05%), 1340원(10.64%) 상승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공공재' 발언에 은행주에 일제히 파란불을 켜졌다. 은행권의 배당정책이 축소될 것이란 긴장감에 투심이 악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4일 하나금융은 2150원(4.39%) 내렸고 KB금융(4.16%) 신한금융(3.31%) 우리금융(2.78%) 주가도 하락세를 보였다.

증권업계는 금리상승 기조에 은행주의 주가 상승을 점치는 한편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점검이 주가 상승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엇갈린 전망을 내놨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주는 연초 이후 배당 기대감으로 계속 상승했다가 단기 주가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생겼다"면서도 "외국인들의 은행주 매수세가 흔들리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장기투자금 유입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