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정부의 의과대학(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 사직 의지를 표명해 환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16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본관과 암병동을 잇는 통로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재이 기자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과대학(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 사직 의지를 표명해 환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16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본관과 암병동을 잇는 통로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재이 기자


"의사들 진짜 맘에 안 들어요"

정부의 '의과대학(의대)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해 의료 현장의 핵심인 전공의들의 '줄사직'이 이어지고 있다. '빅5'(삼성서울·서울대·서울아산·서울성모·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이 19일까지 '집단 사직'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환자와 보호자들은 진료나 수술에 차질을 빚을까 애를 태우고 있다.


16일 오전 10시쯤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은 평일 일찍부터 환자와 보호자들로 붐볐다. 접수 창구 앞은 물론이고 각 과 앞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직 전공의들이 전면적인 근무 중단에 들어서기 전이기에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날 항암치료를 위해 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이모씨(60대·여)는 기자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사들 진짜 마음에 안 든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전공의 파업에 대해 "환자를 볼모로 잡고 하는 행동"이라며 "의사들이 환자들 덕분에 존재하지 않냐. 자기들 직업을 내세워서 환자를 볼모로 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린 의사를 5분도 안 되게 짧게 만나고 돌아서는데 그만큼 부를 얻으면 환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16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본관과 암병동을 잇는 통로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재이 기자
16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본관과 암병동을 잇는 통로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재이 기자


"나한테 피해만 없길"… 불안한 환자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에 환자들은 본인의 치료에 영향을 미칠까봐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16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의 외래 검사 예약 대기 공간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박재이 기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에 환자들은 본인의 치료에 영향을 미칠까봐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16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의 외래 검사 예약 대기 공간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박재이 기자


암병동 5층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서 두 딸과 어머니가 빵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둘째 딸의 항암치료를 위해 대기 중이라는 어머니는 의사 파업에 대해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파서 진료받는 것까지 방해를 받아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앉아 지켜보던 둘째 딸(20대)은 "솔직히 제 진료 날짜랑 겹치지만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다수 환자와 보호자들은 파업과 본인의 치료 일정이 겹치는 것에 대한 불안을 호소했다. 특히 빅5와 같은 대형 종합병원은 다른 병원에 비해 대기 시간과 예약 기간이 긴 데 이어 파업까지 더해지면 어떡하냐는 반응이었다.


원정의료를 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사단체의 단체행동을 비판했다. 심장이 안 좋은 어머니를 모시고 경북 포항에서 올라왔다는 50대 남성 박모씨는 "여기 보세요. 완전 도떼기 시장이지"라며 환자와 보호자로 북적이는 대기실을 가리켰다. 박씨는 "(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다 몰려 있으니까 의사를 늘리는 게 당연히 좋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쏠린 의료 인프라 탓에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병원 방문이 곧 긴 여정이다. 경남 진주에서 진료를 위해 오늘 서울에 왔다는 30대 남성은 "자기들이 신인 줄 안다"며 "어느 집단이 이렇게 파업을 하나. 철도노조도 운행 할 건 하면서 파업한다"고 분노를 토했다.


이날 흰 가운에 가방을 메고 이동하던 한 의대생(20대·여)은 의대 증원에 대해 바로 "잘 모른다"면서 급하게 자리를 떴다. 지난 15일 한림대 의대를 시작으로 전국 40개 의과대학 학생들도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오는 20일 동시에 휴학계(동맹휴학)를 내기로 결정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16일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과 논의한 결과 전공의 전원이 오는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