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아닌 '인재'… 292명의 생명 앗아간 서해훼리호 참사[오늘의역사]
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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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10일,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서 출발한 110톤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이 사망했다.
10일 오전 9시40분쯤 승무원 14명을 포함해 221명이 정원인 서해훼리호는 총 362명의 승객과 화물 16톤을 적재하고 위도 파장금항을 출발했다. 부안 격포항을 향해 출발한 서해훼리호는 출발 30분 만에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돌풍을 만났다. 회황하려고 뱃머리를 돌리다 파도를 심하게 맞은 서해훼리호는 곧바로 전복돼 침몰됐다.
당시 서해훼리호에는 9척의 구명정이 있었다. 하지만 2개만 정상 작동한 것은 고작 2척이었다. 결과적으로 구명정에 탄 승객과 사고 현장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들에 의해 구조된 70명만이 생존했다.
200명 넘게 몰살시킨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원인은?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선박 운용의 문제로 꼽힌다. 승무원을 포함해 221명이 승선 가능했던 서해훼리호에는 사고 당시 총 362명의 인원이 탑승했다. 뿐만 아니라 16톤의 화물도 적재해 열악한 환경 속에 운항을 감행했고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기상 여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무리하게 운항한 것도 문제였다. 물론 악천후였지만 예보 내용을 따라 규정상 출항은 가능했다. 승무원들은 출항을 꺼렸으나 일부 승객이 출항을 요구했고 결국 서해훼리호는 운항에 나섰다.
해당 사고를 조사한 해양전문가 합동조사반은 1993년 12월1일 사고 원인에 대해 선박 구조의 문제가 아닌 정원 초과와 과적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사건을 수사한 전주지검은 같은해 12월13일 초과 승선과 과적, 운항 부주의, 방수구 부족 등을 사고 원인으로 발표했다.
위도 주민 상당수 희생… 슬픔에 빠진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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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희생자 중 전북 부안군 위도면 주민들의 희생이 제일 컸다. 주민 60여명이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군 장교 10여명, 위도면으로 낚시를 온 관광객들이 희생됐다.
사고로 소중한 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에겐 합의에 따라 사망자 1인당 991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경영난을 겪고 있던 서해훼리호의 배상 능력은 10억원에 불과했다. 총 282억원이 보상됐어야 했지만 재정 능력이 부족했다. 이에 해운공제조합에서 73억원, 국민 성금 93억원 그리고 재해연금에서 남은 금액을 채워 충당했다.
서해훼리호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닌 명백한 인재였다. 책임자들의 문책도 당연히 이어졌다. 당시 교통부 장관,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 군산지방해항청장, 해운조합이사장은 해임됐다. 또 교통부와 해운항만청의 관계 공무원 38명이 문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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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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