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영풍 간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지 어느덧 60일이 넘었다.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에 이어 9개월 만에 대기업 경영권 사냥에 나선 데 대해 경영계는 우려하고 있다.


MBK발 쇼크는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김병주 MBK회장이 내놓은 발언은 국내 대기업들에 대한 선전포고 성격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병주 MBK 파트너스 회장은 홍콩 투자은행(IB) 전문 매체 아시아벤처캐피털저널(AVCJ) 인터뷰에서 "역동성을 추구하는 한국 시장은 (기업 지배구조) 변화가 조금 더 빠를 것 같다"며 "우리는 그 변화의 주체 중 하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고려아연과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을 넘어 한국 기업들을 타깃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MBK발 적대적 인수합병(M&A)시도가 지속될 것이란 선전포고에 소유 기반이 취약한 대기업 집단은 또 다른 공격 대상이 될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국내 대기업들은 3·4세 오너 경영인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데 승계 과정에서 선대 회장들에 비해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50% 이상의 상속세를 감안하면 이들이 선대 경영인과 대등한 수준의 소유 기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현재 3·4세 오너 경영인의 지배력 확대 발판이 될 주요 지주사 지분율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친다. 이들은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은 취약하지만 의사 결정의 정점에서 포괄적 권한을 행사한다. 승계 절차 마무리 전까진 상속세 등 이슈로 기업가치 제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에 따른 갈등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창업주 일가라는 상징성에도 지배구조 논란이 불거지면 언제든 승계 정당성을 집중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만큼 MBK와 같은 사모펀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MBK가 노린 대기업들은 불완전한 지배구조와 주요 주주·창업자 가문 간 갈등 등이 공통점이다. 앞서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조현식 전 고문과 조현범 회장 간 갈등이 MBK 개입 빌미가 됐다. 고려아연도 승계 과정에서 외부에 노출된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반목이 경영권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처럼 재계의 승계 과정은 상속세 등으로 쉽지 않지만 사모펀드에 대한 제약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18일 일본 도쿄에서 기관투자자 대상 연차 총회를 열고 6호 바이아웃펀드 2차 클로징까지 50억달러(약 7조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6호 바이아웃펀드 목표액의 약 70% 이상으로 중동 등 해외 큰손들이 출자자의 대부분이다. 토종 사모펀드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해외자본으로 구성된 '검은머리 외국인'이다.

특히 미국 국적 김병주 회장과 중동과 중국 등의 자금이 MBK파트너스의 주주로 참여한 부분도 외국자본 논란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사실상 과거 국내 대기업들을 공격했던 소버린과 론스타, 칼라힐 등 외국자본과 다를 바가 없는 투기적 자본 MBK가 국내 재계를 뒤흔들겠다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이에 한국도 외국계 자본에 대항하고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징벌적 상속세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는 지배구조 선진화에 속도를 내야 하는 게 맞다. 이와 함께 무차별적인 사모펀드의 M&A시도에 대한 부분은 반드시 제약이 필요하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돈의 논리를 앞세워 국내 산업을 휘젓도록 두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현재가 바로 서야 밝은 미래가 기다리는 법이다.
박찬규 산업1부 차장 /사진=김은옥
박찬규 산업1부 차장 /사진=김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