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표적 연기금의 하나인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 여부가 연기금과 벤처 업계의 화두다. 지난 10월 정부가 관계 장관 회의에서 '선진 벤처투자 시장도약방안'에서 신규 벤처투자 주체의 확대, 특히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벤처 업계의 '환영'과는 달리, 연기금 업계에선 '노후 자산을 벤처에 투자하면 위험하지 않나' 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은 듯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을 너무 보수적으로 운용해서 그런지 수익률이 낮아, 실질 가치를 보존하지 못한다는 소리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물가상승률을 뺀 현재 1000만원은 20년 후에 반토막, 만약 부동산가격 상승까지 고려하면 10년 후에 이미 반토막으로 된다는 의견이다.

퇴직연금 현황부터 살펴보자. 2023년 기준 규모는 382조4000억원으로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1147조원)의 3분의 1이다. 1%만 해도 4조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지난 5년간 성장률은 연평균 15%, 향후 10년간도 연 9.4%의 고성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수익률은 높지 않다. 2023년은 5.26%로 다소 호전됐지만, 지난 5년과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2017~2021년의 5년간 수익률을 국민연금과 비교한 분석을 보면 국민연금은 연평균 7.63%, 퇴직연금은 그의 4분의 1에 불과한 1.94%였다.


그럼 벤처투자의 성과는 어떤가. 벤처펀드 기준 우리나라 벤처투자의 성과는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과 달리, 벤처투자조합을 제도화한 1987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무려 연평균 8.7%였다. 이는 그동안 청산된 1107개 펀드를 전수 분석한 결과로, 특히 전체 펀드의 3분의 2가 연평균 15.7%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점에서 적절한 펀드 선택에 따라선 위험도 상당히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공성이 높은 분야(창업 초기 등)에 투자하는 한국벤처투자(주)의 모태펀드도 청산 펀드 277개를 기준시, 원금의 1.5배를 회수하고 연평균 9.0%의 수익을 실현했다. 이는 동기간 국고채금리의 약 2배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익률이다.

퇴직연금에 앞서 벤처에 투자한 연기금의 성과는 어떤가. 연기금 벤처투자가 시작된 2014년부터 2023년까지의 연평균 수익률은 국민연금 13.9%, 사학연금 10.1%, 공무원 연금 9.2%이었고, 과학기술공제회는 11.9%, 고용보험 기금은 무려 17.2%의 수익률을 실현했다고 한다. 이들 연기금의 벤처투자수익률이 벤처투자 전반의 평균 수익률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자금력과 신용도가 좋아서 그만큼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는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2008년 리만 위기와 그 후 저금리 상황에서 수익률을 높이려고 부동산, 사모펀드, 벤처투자 등 대체투자를 확대한 것이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공무원 퇴직연금(CalPERS)이다. 규모는 2024년 6월 5029억달러(699조원)로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1.8배. 벤처투자 규모는 2020~2023년 연평균 18억3000달러, 연금 총규모의 약 3%를 벤처투자에 할당했다. 2677억달러(372조원) 규모의 뉴욕주 공동 퇴직기금도 2023년 기준 11억달러(2.9%)를 투자하고 있다.

벤처투자가 활발하지 않았던 유럽도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이 2023년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의 독일 성장 펀드를 조성했고, 프랑스의 연금준비기금(327억유로)은 2022년까지 벤처 후기단계 및 성장펀드 등에 5억유로(약 7000억원, 총기금의 1.5%)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은 더 적극적이어서, 지난 7월 2030년까지 벤처투자를 포함한 비상장 주식을 500억파운드(퇴직연금의 2~2.5% 수준)까지 늘리고,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기본펀드의 5%를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퇴직연금들도 미국을 중심으로 벤처투자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으로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도 퇴직자 노후 자산의 보다 높은 수익률을 위해서도, 또 미래 성장동력인 벤처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디지털경제금융포럼 대표 / 그래픽=김은옥 기자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디지털경제금융포럼 대표 / 그래픽=김은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