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혀를 물어 오히려 범죄자가 된 최말자씨의 재심이 열리게 됐다. 사진은 지난 2023년 5월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혀를 물어 오히려 범죄자가 된 최말자씨의 재심이 열리게 됐다. 사진은 지난 2023년 5월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60년 전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가해 남성의 혀를 깨물어 오히려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던 최말자씨에 대한 재심이 열리게 됐다.


지난 12일 뉴스1에 따르면 부산고법 형사2부(이재욱 부장판사)는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씨의 '재심 기각 결정에 대한 항고'를 받아들여 지난 10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찰 수사 단계에선 성폭력 범죄 피해자로서 정당방위 주장을 인정받았음에도 돌연 검찰 수사단계에선 구속돼 수사받은 다음 중상해죄로 기소됐고 재판 과정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순결성 감정을 받았으며 피고인의 성 경험 여부가 언론을 통해 공표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일련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 더해 피고인 스스로 밝힌 재심 청구 의도나 동기 등에서 부자연스럽고 비합리적이라거나 재심 제도를 악용한다고 볼 만한 사정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객관적 자료를 현재 찾을 수 없거나 그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건 수십 년 전 발생한 수사기관의 범죄혐의에 대해 그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하는 피고인 개인에게 '수사기관이 수사해 공소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공소 유지를 해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와 동일한 수준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함으로써 재심사유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수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에 관한 증거가 산일된 게 재심 청구인의 귀책 사유라고 볼 수 없음에도 이를 순전히 재심 청구인의 불이익으로 돌리는 결과가 돼 부당하다"면서 재심 개시 이유를 밝혔다.

검찰이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3일 이내 항고하지 않으면 재심개시결정이 확정되고, 재판부는 해당 사건을 대심리해 재심 청구인의 유무죄 여부를 판단한다. 검찰은 지난달 심문기일에서 "대법원이 재심 청구인 진술 그 자체를 핵심적 증거로서 신빙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하고 청구인 진술에 부합하는 당시 신문 기사 등을 토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의 취지를 존중한다"는 의견을 밝혀 조만간 재심이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이 사건 발생 56년 만인 2020년 5월 한국여성의전화 등 단체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으나 당시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무죄로 볼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최씨는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에 의한 재심 사유를 주장하며 재항고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불법 구금에 관한 재항고인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며 최씨 손을 들어줬다.

지난 1964년 5월6일 18세였던 최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 노모씨(당시 21세)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어 1.5㎝ 절단한 혐의(중상해죄)로 구속 기소됐다. 6개월 동안 구금 끝에 이듬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최씨는 성폭행에 저항한 정당방위임을 주장했으나 당시 검찰과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성폭행을 시도했던 노씨는 성폭력 혐의는 미수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특수주거침입죄와 협박죄만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