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캐나다에 공장을 건설한 뒤 미국으로 우회 수출하는 전략을 위해 현지에 진출한 배터리 기업들은 분주하게 대응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지난 4일(현지시각)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10% 추가 관세도 시행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TSMC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자동차 공장 등을 지으면 관세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관세를 내야 할 것"이라며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 우회 수출을 위해 캐나다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캐나다·멕시코의 '3국 자유무역협정'(USMC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았다. 캐나다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혜택을 받은 배터리사들은 미국의 정책에 따라 관세를 내게 됐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대미 투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배터리 대미 투자 신고액은 2021년 2억5300만 달러에서 2023년 38억4000만 달러로 15.2배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신고금액은 41억9900만 달러다.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북미 투자를 확대해 왔다. 캐나다엔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등이 생산 기지를 구축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완성차업체 스텔란티스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49.5GWh(기가와트시) 규모의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투자 규모는 총 40억 달러(5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0월부터 모듈 생산을 시작했으며 올해 중 셀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포스코퓨처엠과 제너럴모터스(GM)은 캐나다 퀘벡주에 연산 3만톤 규모 하이니켈 양극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지난해 9월 완공 목표였으나 올해 중순으로 연기됐다. 투자금은 6억3300만 달러다.

에코프로비엠도 SK온, 포드와 퀘벡주에 양극재 공장을 구축하고 있다. 12억 캐나다달러가 투자되는 양극재 공장은 연산 4만5000톤 규모로 2026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극재는 북미 지역에 있는 포드 공장에 공급돼서 차세대 트럭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미 상당 부분 투자를 집행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난감하다. 매몰 비용이 상당한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수익성 제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자동차 관세는) 예견했던 시나리오 중 일부"라며 "시나리오대로 준비하고 있으며 큰 기조는 리밸런싱, 즉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철회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관세를 장기간 부과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명분이 마약 철폐와 불법 이민 방지인 만큼 해당 문제가 일부 해소되면 관세를 거둬들일 것이란 관측도 있다.

관세 부과가 장기화할 경우 산업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중단기적으론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명분이 펜타닐과 불법 이민 해결인데 협상을 통해 다른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방향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까지는 상황을 관망하는 게 현명하다"고 밝혔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캐나다 정부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버틸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