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스테인리스업체 사장인 정진택씨(가명·43)가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업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이한듬 기자


"솔직히 이렇게까지 힘든 적이 있었나 싶어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작은 스테인리스 회사를 운영하는 김진택씨(가명·43)는 요즘 사업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의 회사는 사장을 포함해 총직원이 7명인 소규모 사업장이다. 원래는 부친이 운영하던 것을 17년 전 김씨가 대학을 졸업한 후 합류해 업무를 배웠고 현재는 경영권을 이어받아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김씨 회사의 주 업무는 건설 현장에서 철제 사다리나 난간 등의 제작 주문이 들어오면 요청에 맞게 제작해 납품하는 일이다. 국내 대기업 공장 설비시설 유지·보수에 필요한 파이프를 제작·납품하는 일도 한다.


하지만 요새는 주문이 크게 줄었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사태 등 기존에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으나 요즘처럼 최악은 아니었다는 게 김씨의 전언이다.

그는 "코로나19 때 특히 내수가 급격히 침체되면서 상황이 많이 안 좋았는데 어떻게든 버텼다"며 "그런데 요새는 코로나 때보다 주문 자체가 크게 줄었다. 일감이 없다"고 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일감 크게 줄어… "직원 월급 주려면 대출해야 할 판"

원인은 건설경기 침체 탓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1월 건설 수주는 지난해 동월 대비 25.1% 감소했다. 건설허가면적이 33.2%, 건축착공면적은 32.6% 줄었다. 건설 기성(시공한 공사실적)도 26.8% 감소했다.


수주, 허가, 착공 실적은 건설 경기의 선행지표로, 건설 기성은 동행지표로 쓰이며 최소 6개월에서 최대 3년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건설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건설경기 침체로 대형 철강업체들의 실적도 크게 줄어드는 등 연계된 산업 전반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김씨는 "건설시장 자체가 워낙 안 좋다 보니까 대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리 같은 하청의 하청의 하청은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 스테인리스업체 사장인 정진택씨(가명·43)가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업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이한듬 기자


지난해에도 건설경기 침체 여파로 매출이 크게 줄었는데 올들어서는 이마저도 반토막이 났다. 김씨는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매출이 (전년대비)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이제 직원들 월급을 주려면 대출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사업을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도 해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함부로 생업을 처분하긴 쉽지 않아서다. 그는 "올해 둘째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돈이 들어가야할 곳이 많다"며 "경기가 빨리 회복돼 상황이 나아지는 것만 기다리고 있는데 현재로선 언제쯤 개선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수 살리고 경제 살릴 대통령 필요… 내란 세력도 정리해야"

김씨는 다음 대통령은 경제를 확실하게 살릴 수 있는 인물이 당선돼야 한다고 했다. 내수를 진작해 국내 시장에 자금이 돌아야 투자가 늘고, 덩달아 건설경기도 살아나 사업 운영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 대통령은 첫째도, 둘째도 '경제 회복'을 우선시했으면 좋겠다"며 "후보들의 경제 정책을 꼼꼼하게 살펴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금리 인하나 기간 연장 등의 혜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당장 급한 불은 끌수 있겠지만 대출은 결국 빚이고 언젠간 갚아야하는 것"이라며 "빚만 늘리는 근시안적인 혜택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중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가뜩이나 사업도 잘 안 되는데 뉴스를 틀면 좋은 소식은 안 들리고 매번 무속이니 비상계엄이니 이상한 사건들만 터지니까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며 "현 상황의 조속한 수습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 김씨는 집에서 홀로 TV를 보다가 두 눈과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이후 먼저 잠든 아내를 깨워 함께 비상계엄 진행 상황을 살피는 한편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며 뒤숭숭한 밤을 보냈다.

다행히 비상계엄 조치는 국회에서 해제 요구를 거쳐 6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이 이뤄지긴 했으나 이 과정에서 123일이라는 기간이 소요됐고 아직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씨는 "가뜩이나 힘든 시기에 내란으로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며 "내란을 일으킨 주범들과 이에 동조하고 옹호한 모든 추종 세력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회복은 단시간에 이뤄지긴 어렵겠지만 내란 세력은 조속한 시일 내에 확실히 뿌리를 뽑고 가야 한다"며 "다음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