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고령층도 야구 즐긴다"… '디지털 장벽' 낮추는 현장판매
곽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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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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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표 구하려고 3시간 줄 섰다가 앞에서 끊긴 적도 있어요. 경기 직전에 와도 표가 있다니 너무 편하고 좋네요."
역대급 야구 흥행… 그러나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이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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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KBO리그는 역대 최소 경기인 350경기 만에 관중 600만명을 넘었다. 프로야구 출범 이래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돌파한 지난해보다 빠른 속도다. 지난해에는 418경기 만에 600만 관중을 달성했다. 올해는 68경기나 이른 시점에 6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프로야구의 인기를 입증했다. 이 속도면 전체 720경기 기준 1243만 관중 동원이 가능하다. 프로야구 최대 관중 기록이 기대된다.
젊은 세대의 유입과 인기 구단의 좋은 성적으로 프로야구는 역대급 흥행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야구 경기를 직접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야구팬들이 존재한다. 바로 '디지털 취약 계층'이다. 특히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는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 야구 표를 직접 구매하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엘지트윈스가 MBC 청룡이던 시절부터 야구를 봐왔다고 밝힌 원년 팬 A씨(60대)는 "인터넷으로 야구 예매하는 게 복잡하고 어렵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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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야구장 입장권은 구단별로 지정된 인터넷 티켓 구매 플랫폼에서 예매할 수 있다. 국내 프로야구 10개 구단 모두 일반 예매보다 먼저 예매를 시도할 수 있는 유료 멤버십 회원권을 운영하고 있다. 높아진 야구 열기에 멤버십 가입 시 내는 금액에 따라 예매 가능 시간에 차등을 둔 '선선선예매'를 실시하는 일부 구단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SSG랜더스 팬이라고 밝힌 신지인씨(24·여)는 "선선예매 대상자가 되기 위해 7만원을 주고 회원가입 했는데 얼마 전 김강민 은퇴식 같은 인기 경기 예매에 실패했다"며 "20대도 야구 예매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인터넷 사용이 서툰 어르신들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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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 경기 날 야구장 근처에서 표를 간절히 구하는 어르신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SNS상에 올라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산베어스 팬인 김채원씨(24·여)는 "주말에 잠실 야구장에서 일행 표를 포함해서 여러 개를 들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남는 표 한 장만 팔아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며 "한참 동안 중앙 매표소 앞을 서성이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100% 온라인 예매가 주는 편리성도 분명 있지만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취약층에게는 이런 시스템이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티켓링크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예매자(6개 구단 대상) 중 65세 이상은 0.7%에 불과했다.
달라지는 야구 구단들… '디지털 취약 계층' 위한 좌석 현장판매 동참
야구팬들 사이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현장 판매 표에 대한 필요성이 계속해서 나오자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는 이들을 위한 현장 판매 좌석 70석을 마련했다. 그리고 올해는 현장 판매 석을 220석으로 늘려 디지털 취약층을 위한 현장 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롯데 외에도 KIA타이거즈도 일부 현장 판매 좌석을 따로 마련하고 있다.![]() |
서울을 연고지로 두고 있는 LG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각각 지난달 10일과 24일부터 디지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160석씩 현장 판매를 시작했다. 만 65세 이상과 장애인이 대상이다.
LG 관계자는 "프로야구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야구 표를 구하는게 더 어려워졌다"며 " 디지털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사회 분위기나 국가정책에 맞춰 야구구단들도 취약 계층을 배려할 수 있는 개선 방향을 계속 찾고 있다"고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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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지난달 24일과 27일 두 차례 잠실야구장을 직접 찾았다. LG와 두산 모두 잔여석을 판매하는 중앙매표소가 아닌 별도의 전용 창구를 만들어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현장판매를 했다. 두산의 경우 제1매표소, LG의 경우 제3매표소에서 현장 판매 표를 구매할 수 있다.
두산이 현장 판매를 시작한 첫날인 지난달 24일은 해당 표를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당일 잔여 좌석이 여유 있게 남아 있었고 아직 첫날인 만큼 홍보가 안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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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예매할 수 있는 잔여 좌석이 없던 지난달 27일 열린 LG와 KIA의 경기 날 다시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디지털 취약 계층 현장 판매 전용 창구에서 표를 구매한 후 경기장으로 향하던 A씨는 "엊그제 경기장에 왔다가 우연히 안내문을 보고 이런 제도를 알았다"며 "언제부터 시작된 거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날 경기가 이번 시즌 13번째 직관 경기라고 밝힌 A씨는 "이런 제도 없었던 때는 일요일에 현장 판매 표 대기 줄을 3시간 섰다가 앞에서 딱 끊어진 적도 있다"라며 "경기 시작 15분 전에 현장에서 예매하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표가 있어서 너무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표를 사고 서둘러 경기장으로 향하던 B씨(60대)도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며 "우리 고령층도 야구를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좋다는 말 말고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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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야구팬들에게도 디지털 취약 계층 현장 판매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김씨는 "원년 팬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우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며 "플레이오프나 중요한 경기에 한해서는 현장 판매 좌석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도 언제 취약 계층이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제가 응원하는 구단인 SSG랜더스도 시행했으면 좋겠다"며 "노년층 팬이 많은 임영웅 콘서트는 전화로 예매가 가능한 것처럼 KBO도 다양한 취약계층을 위한 예매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구팬이 아니라고 밝힌 백수지씨(24·여)는 "작년에 디지털 취약 계층 현장 판매를 롯데자이언츠가 도입한다는 기사를 봤다"며 "오랜 역사를 자랑해 고령층 팬이 많은 프로야구에 이런 제도가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는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가 도입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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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팬 이동훈씨(26)는 "디지털 취약 계층 현장 판매는 취지는 좋지만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며 "암표로 팔거나 대리 구매를 구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당근마켓에 만 65세 이상 대리 구매자를 구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LG 관계자는 "표 종류를 다르게 해서 일반 구매분과 구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라며 "일반 팬들이 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서로 경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구장 현장판매, '문화 접근성 회복'의 첫걸음
경희대 Age Tech 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한국 고령자의 디지털 리터러시는 100점 만점 기준 평균 38점으로 2019년(30점)에 비해 소폭 향상됐다. 하지만 다른 연령층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2023년 실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의 67.2%가 정보화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음이 드러났다.한국은 지난해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들어섰다. 고령층은 많아지고 있지만 디지털 사회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점점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소외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신혜리 경희대학교 노인학과 교수는 "온라인 기반의 공공·문화 서비스에 접근이 어려운 고령자는 병원 예약, 공연 예매, 주차비 지불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본적인 일상 참여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며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양한 여가문화를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서비스와 문화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야구 구단들의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현장 판매에 대해서는 "문화 접근성을 회복하고 세대 간 문화 격차를 완화하려는 중요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런 제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디지털 취약 계층에게 실생활과 연결된 실용적 콘텐츠와 교육을 통해 주체적으로 디지털 환경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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