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의 함정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객관성의 함정'은 수치화와 통계가 지배하는 오늘날,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수많은 정보의 기반을 의심한다. 책은 과학과 통계에 대한 맹신이 만들어낸 서열화, 경쟁, 배제의 구조를 비판하며, 그 너머의 대안을 모색한다.


"그 의견에 객관적인 타당성이 있습니까?" "숫자로 증명할 수 있나요?" 이런 질문들은 현대 사회에서 객관성이라는 이름의 권력을 보여준다.

저자 무라카미 야스히코는 객관성이라는 개념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며 시작한다. 자연과학의 발전은 인간 사고의 중심을 수치로 옮겨놨고, 이는 결국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예를 들자면 지능검사, 시험 성적, 생산성 지표 등은 인간을 측정 가능하고 비교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놓쳐온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맥락과 감정, 존재의 고유성이다.

저자는 객관성의 폭력이 일상에 스며든 현실을 지적한다. 우생학, 인종차별, 빈곤층 배제의 논리는 모두 통계와 수치를 근거로 등장했고, 그 수치들이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그는 '진실처럼 보이는 숫자'가 얼마나 쉽게 권력화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돌봄노동, 교육, 복지 같은 분야에서 수치화가 어떻게 인간 존엄을 희석시키는지를 구체적 사례로 분석한다.

객관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돌봄'이라는 개념을 통해 객관성의 폭력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해법을 제시한다.


일본 니시나리구의 사례를 들며, 경쟁이 아닌 상호 돌봄이 가능한 사회 구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구조는 숫자가 아닌 이야기로, 통계가 아닌 경험으로 작동한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윤리, '아무도 외면당하지 않는 세계'다.

'객관성의 함정'은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그렇게 수치를 믿는가. 그리고 그 믿음은 누구에게 유리하며, 누구를 배제하는가. 이 책은 객관성이라는 이름의 단순화를 넘어, 복잡하고 생생한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 객관성의 함정/ 무라카미 야스히코 씀/ 문학수첩/ 1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