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딥시크(DeepSeek)의 돌풍 이후 중국 AI의 생태계 변화가 뚜렷하다. 2~3년 전만 해도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빅테크가 AI를 주도했지만, 딥시크가 고성능·저비용의 LLM(초대형 언어모델)을 발표한 후로는 혁신 벤처기업들이 중국 AI산업의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대표급 주자는 소위 'AI 타이거'. 딥시크에다 초장문(超長文) 처리가 특기인 문샷 AI, 영상·음성 변환이 전문인 즈푸 AI, 멀티모달(multimodal :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 모델인 미니맥스와 오픈 소스를 제공하는 01.AI를 합친 5개 벤처기업이 그들이다. 다섯 개 업체 모두 유니콘 기업(비상장기업으로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이며, 최근 들어선 대용량의 문서나 법률·학술 등 전문 자료에 장점이 있는 문샷 AI, 홍콩 상장을 앞두고 있는 미니맥스가 특히 관심 대상이다. 시장에선 중국의 AI 산업 생태계가 이전의 '빅테크 주도형'에서 이젠 빅테크는 인프라 및 플랫폼 역할로 뒷받침하고 혁신 벤처기업이 AI 기술·서비스 개발에 앞장서는 '벤처기업 주도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견이다.


중국 AI 산업이 왜 벤처 주도로 됐나.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AI 벤처 육성책을 첫 번째로 꼽는다. 이에는 AI 핵심 전략인 민관학(民官學) 모델의 성공을 위해선 빅테크보다 벤처기업 주도가 유리하다는 인식이 바닥에 깔려 있다. 벤처기업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신기술·서비스 개발의 '실험-실패-개선' 주기가 짧아 정책 및 연구 지원만 잘 이뤄지면 기술 혁신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반면, 빅테크나 대기업은 인력·기술 등 자원은 풍부하지만, 민관학 프로젝트 수행 시, 기술 개발이 기존 수익모델에 걸림돌이 된다든지, 시장의 독과점 이슈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AI 등 벤처기업 투자에 1조 위안(190조 원) 상당의 기금, AI 벤처 사업화를 위해 특허 절차 간소화, 벤처기업이 정부·대학과 실증사업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제 특례 등을 마련하고 있다.

또 하나는 벤처기업의 오픈소스 문화다. 벤처기업은 대규모 독자 모델을 처음부터 끝까지 폐쇄적으로 개발하는 빅테크·대기업과 달리, 이미 오픈된 모델과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또 이들을 개방, 다른 벤처기업 및 연구자들과 공유한다. 현재 중국 AI 산업은 모델과 데이터의 공유·융합을 통해 급속한 혁신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성과를 개방·공유하는 벤처기업들이 그만큼 중국 AI의 주역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어떤 효과가 나타나고 있나. 우선 딥시크, 문샷 AI 등에서 보듯이 해외 의존도가 높던 AI 모델의 중국 내 자급률을 높이는 효과다. UBS는 중국의 AI 연산 자급률은 2024년 33%에서 2029년엔 90%,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AI GPU 자급률이 2024년 34%에서 2027년엔 82%까지 상승할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산 AI 칩을 생산하는 화웨이, Ascend 등에도 도움이 되는 건 물론이다. 둘째, 빅테크는 리스크관리, 기존 사업 이해관계, 내부 승인 절차 등 때문에 산업별·고객별 대응이 느린 반면, 벤처기업은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해 신속하게 솔루션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수익성이 낮아 빅테크·대기업이 외면하는 소규모 틈새시장(Niche market)도 적극 공략할 수 있어서, 그만큼 다양한 산업 및 수익모델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무튼 이러한 중국의 '벤처 주도의 AI 생태계 변화'는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AI 100조 원 펀드' 정책 관점에서도 곱씹어볼 만한 시사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한·중 여건은 다르지만, AI의 발 빠른 기술 혁신과 다양한 산업으로의 빠른 확산을 위해선 소수의 대기업·빅테크 주도가 아닌 기민한 벤처기업들의 개방형 참여와 주도가 필수적이지 않을까.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경제금융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