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뮤지엄 특별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We, Such Fragile Beings)의 테마 공간 '유리 코스모스' 전시 전경 (포도뮤지엄 제공)


(서귀포=뉴스1) 김정한 기자 = 제주도 서귀포의 포도뮤지엄이 특별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We, Such Fragile Beings) 2026년 8월 8일까지 1년간 선보인다. 국내외 작가 13인이 참여해 "광활한 우주 속 미약한 존재인 우리는 왜 서로 미워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라는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8일 포도뮤지엄에서 열린 전시 투어와 기자간담회에서 김희영 총괄디렉터는 "이번 전시는 1990년 보이저 1호가 64억km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 일명 '창백한 푸른 점'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주의 스케일을 떠올리는 일은 생각의 분모를 키우는 일이며 일상의 고민과 문제들을 초월하는 힘을 준다"라며 "작가들의 눈을 통해 아름다움과 희망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고 공존하며, 폭력에서 치유로 나아가는 과정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포도뮤지엄 제공)


애나벨 다우 When in the course of human events (포도뮤지엄 제공)


'제1전시실: 망각의 신전'은 증오와 폭력의 현실을 직시하는 공간이다. 4명의 여성 작가가 인간 본성을 깊이 성찰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모나 하툼은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만든 불안한 구조물로 전쟁과 폭력의 비극을 상기시킨다. 제니 홀저는 소셜 미디어의 공격적인 글들을 수집해 납과 구리판에 새겼다. 라이자 루는 인종차별 피해자였던 줄루족 여성들과 함께 그들을 억압했던 철조망을 수백만 개의 구슬로 덮었다. 애나벨 다우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모은 일상적인 말들을 긴 천에 적어 인간이 가진 공통점을 되새겼다.

마르텐 바스, 리얼 타임 컨베이어 벨트 클락 (포도뮤지엄 제공)


이완 고유시 (포도뮤지엄 제공)


'제2전시실: 시간의 초상'은 시간이라는 무형의 개념을 마치 초상화처럼 구체적인 존재로 다룬다. 시간 앞에서 무력한 인간 존재의 공통된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수미 카나자와는 수백 장의 신문을 연필로 덮어 커튼처럼 이어 붙여 반복되는 시간을 물질로 표현했다. 마르텐 바스는 끊임없이 시계 바늘을 조립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시간의 작은 단위에 갇혀 사는 현대인을 보여준다. 사라 제는 모두 다른 삶을 살지만 꿈속 무의식의 풍경은 놀랍도록 공통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완은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560개의 시계를 통해 각자 다르게 느끼는 시간의 속도를 시각화했다.

이색적인 테마 공간도 있다. '유리 코스모스'는 유리에 관람객이 숨을 불어넣으면 유리 전구가 빛을 내는 작품으로, 개인의 고통과 집단적 치유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별의 먼지다'는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1977년 보이저호의 '골든 레코드'에 담긴 인류의 인사말을 들으며 자신이 우주 속 작은 존재임을 느끼게 하는 몰입형 설치 작품이다.


김한영 SH202509-A (포도뮤지엄 제공)


쇼 시부야 MANHATTANHENGE (포도뮤지엄 제공)


'제3전시실: 기억의 거울'은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서로를 비추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한·중·일 작가 4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지현, 김한영, 송동, 쇼 시부야는 각자의 작품을 통해 작은 일상의 반복이 주는 위로와 회복의 힘을 보여준다. 이들의 답은 결국 '사랑'이다. "부서진 세상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소소한 시선 속에 숨어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로버트 몽고메리 Love is The Revolutionary Energy (포도뮤지엄 제공)


전시의 마지막은 야외 정원에 설치된 로버트 몽고메리의 LED 조형물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랑은 어두움을 없애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혁명적인 에너지다"라는 한 문장이 전시의 모든 여정을 관통한다.

관람객들은 '망각의 신전'에서 증오를 마주하고, '시간의 초상'에서 우리의 보편성을 깨닫고, '기억의 거울'에서 희망을 찾은 후, 최종적으로 '사랑'이라는 가장 확실한 답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포스터 (포도뮤지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