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국장. (출처: Meraj Muhammad, 2007,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7년 8월 14일, 영국령 인도 제국의 해체와 함께 파키스탄이 새로운 독립국으로 탄생했다.


이날은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하고자 한 무슬림 연맹의 오랜 염원이 실현된 날이었다. 하지만 이 독립은 종교를 기반으로 한 분할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파키스탄 독립은 마운트배튼 경이 주도한 영국 정부의 분할 계획, 즉 마운트배튼 플랜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계획은 1947년 6월 3일 발표됐으며, 벵골과 펀자브 지방을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인구 비율에 따라 양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은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과 서파키스탄이라는 지리적으로 분리된 두 지역으로 구성되는 기형적인 형태를 띠게 됐다.


분할 과정은 극심한 혼란과 폭력으로 얼룩졌다. 독립을 앞두고 펀자브와 벵골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대규모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는 새로 수립된 인도 연방으로,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이주 도중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학살당하거나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파키스탄의 독립과 분할은 국경선 재조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수 세기 동안 공존해 온 공동체가 종교적 정체성이라는 명분 아래 갈라선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후 세 차례의 전쟁과 카슈미르 분쟁을 겪는 등 현재까지도 불안정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1971년에는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면서 파키스탄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경험했다. 1947년의 분할은 단순히 두 국가를 탄생시킨 사건이 아니라, 현대 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지형을 형성하고 수많은 비극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