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0일 [대행사의 정비사업 쟁탈전] 기사 3편이 보도된 후 한 대형건설업체 임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돈'만 되면 불법 빼곤 무엇이든 하는 것이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차이다. 국내 건설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시대에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수주 소모전은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


국내 내로라하는 대형건설업체들이 정비사업 수주전만 시작되면 돌변하는 모습은 십수년 전부터 반복돼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대행사가 시장 참여자의 주축으로 뛰어든 것이다.

기업들이 노동력을 동원하고 리스크를 외주화해 각 사업 분야에서 대행사의 업무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정비사업 수주시장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면이 있다.


정비사업 조합이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은 민주적 절차인 투표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하나의 작은 정치판이 된다. 투표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데, 문제는 선거에서 가장 쉽게 이길 수 있는 전략이 바로 '네거티브 선전'이라는 것이다.

국회 정치판에서조차 비난 받는 네거티브 선전이 정비사업 시장에선 퇴보 수준으로 역행하고 있다. 대행사가 도를 넘는다는 논란이 지속되면서 이들에게 돈을 내고 사업을 의뢰한 건설업체들도 곤란을 호소한다. 기업의 위상과 맞지 않을 뿐더러 건당 수십억원의 보수를 내고도 반드시 승리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발을 빼는 경우도 생겼다.


정비사업 공사비는 수천억에서 최대 수조원대에 달한다. 시공사가 얻는 이익 대비 대행사 보수가 미미한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부정 선거 활동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은 시공사가 조합원에게 금품, 향응,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약속한 행위를 금지한다. 사실과 다르거나 부풀린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도 불법이다. 이를 위반 시 입찰 무효 처리되며 반복 적발 때는 퇴출도 가능하다.


하지만 허위·과장 선전과 이를 목적으로 이뤄지는 언론 청탁 등은 사실 입증이 쉽지 않아 제재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사실 확인이 안된 블로그 글이나 비방 기사가 조합원 카톡방을 통해 유포됐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삭제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애초부터 회사 이미지 하락과 조합원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행사 중에 해당 논란의 근원이 실제 많은 것은 아니다. 네거티브 선전이 시작되는 트러블메이커가 있고 경쟁사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패턴이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업계 내에 자성의 소리가 나온다.

2018년 10월부터 정부는 시공사의 조합원에 대한 금품 제공 시 시공권 박탈과 공사비의 20%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 등 규제를 강화했다. 국세청은 대행사가 용역 대가를 부풀리거나 조합원이 금품 형태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례를 적발해 세무조사와 형사 처벌을 예고했다.

강력한 처벌도 해결 방법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사업 주체인 조합원이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신뢰받는 시장 질서를 확보할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워야 한다. 나쁜 용역 관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업비 증가 문제는 조합원의 분담금뿐 아니라 일반분양가로 전가되는 원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노향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