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옥계면 해안가에 수상한 잠수함 한 척이 발견됐다. 사진은 우리군이 해안가에 좌초된 북한 상어급 소형 잠수함 내부를 조사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이제만나러안갑니다' 캡처


1996년 9월18일 오전 강원 강릉시 옥계면 해안가에서 좌초된 잠수함 한 척이 발견됐다. 잠수함을 최초로 발견한 택시기사 이진규씨는 이를 수상히 여겨 신고했다.


곧이어 현장에 도착한 우리 군은 해당 잠수함이 북한 정찰총국 소속 상어급 소형 잠수함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잠수함 내부를 조사했다. 하지만 안에 탑승한 북한 공작원들은 이미 상륙해 도주했다.

잠수함을 타고 온 공작원들은 무기와 폭약, 군 장비를 소지한 채 산악 지대로 잠입했고 이에 우리 군은 곧바로 육군 28개 부대·해군 1개 함대·공군 1개 전투비행단·수십만의 예비군·경찰병력을 동원해 전국적인 대간첩 작전을 개시했다. 작전은 49일 동안 이어졌다. 작전이 개시되는 동안 강릉 및 인근 지역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전시와 같은 긴장감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사건의 전말

강원 강릉시 옥계면 해안가에 수상한 잠수함 한 척이 발견됐다. 사진은 산악·민간지역으로 달아난 북한 공작원을 검거하기 위해 우리군이 대간첩작전을 개시한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이제만나러안갑니다' 캡처


잠수함을 타고 온 공작원들은 26명으로 이들은 침투 당시 3인 1조로 구성돼 있었고 우리군 시설 정찰 및 주요 요인 암살, 사회 혼란 조성을 임무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잠수함이 기관 고장으로 암초에 걸려 해안에 떠오르자 일부는 육로를 통해 탈출을 시도했고 또 다른 일부는 민가에 침입하거나 교전을 벌이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군인 11명,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공작원 13명이 사살됐고 11명은 극단적 선택, 1명은 생포, 1명은 실종됐다. 생포된 이광수는 이후 귀순했고 남측 정보기관에 의해 보호 조치를 받는 동시에 조사에 응해 북한의 정찰 활동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북한은 해당 사건 발생 직후 책임을 부인했지만, 외교적 압력 속에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나 배상은 끝내 없었다.
강원 강릉시 옥계면 해안가에 수상한 잠수함 한 척이 발견됐다. 사진은 산악·민간지역으로 달아난 북한 공작원을 검거하기 위해 우리군이 대간첩작전을 개시한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이제만나러안갑니다' 캡처


사건 결과 및 사회적 반향

강원 강릉시 옥계면 해안가에 수상한 잠수함 한 척이 발견됐다. 사진은 해안가에 좌초된 북한 상어급 소형 잠수함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이제만나러안갑니다' 캡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북한 무장간첩 침투 사건이었다. 당시 군의 경계 실패와 초기 대응 미흡에 대한 국민적 여론과 비판이 거셌다. 이후 정부는 해안선 경계 강화, 무장 침투 대응 훈련 확대, 감시 장비 현대화 등 대책을 마련했다.


또한 해당 사건으로 인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크게 고조시켰으며 우리 국민들도 북한의 무력 도발 가능성을 현실로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국가안보 위기 대응 매뉴얼도 재정비하게 됐으며 이후 이 사건은 다큐멘터리와 언론 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재조명됐고 남북 관계의 민감성과 안보 현실을 일깨우는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