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정부 여당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 사진=뉴시스DB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한 3차 상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 비상등이 켜졌다.


해외투기자본 등 외부 공격으로부터 경영권이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는 현실을 고려해 방어수단 마련을 병행

15일 정치권 및 재계에 따르면 지난 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경제8단체 간담회'에서 민주당은 올해 연말을 목표로 3차 상법 개정안 처리를 진행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재계가 최근 잇따라 통과한 1,2차 상법개정안과 노란봉투법 등 기업의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들에 우려를 표하며 속도조절을 요청했지만 민주당은 이달 중 당 차원에서 밑그림을 논의하고 국정감사기간까지 재계와 전문가 의견을 들인 뒤 11월부터 구체적인 보완을 거쳐 연내 처리를 최대한 추진한다는 목표다.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을 회사가 사들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법적으로 완전히 없애 발행주식 수를 줄이는 행위를 말한다.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BPS)이 상승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대표적인 주주친화정책으로 꼽힌다.


문제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기업을 방어할 수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필요한 경우 우호세력에 이를 매각해 의결권을 살리는 방식으로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대응해왔다.

다만 이 같은 관행이 한편으로는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있어왔다. 이 때문에 주식의 가치가 저평가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여당이 3차 상법개정안에 속도를 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해 기업의 저평가된 주식 가치를 끌어올려 '코스피 5000시대'의 추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상법 개정은 기업의 부당한 일부 주주를 옥죄 회사를 살리고 압도적 다수 주주에게 도움을 줘 국민경제 살리는 것"이라며 "기업이 제대로 평가받게 상법을 개정해 경영 풍토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업들도 이 같은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호소한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가 날로 심화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 외에는 별다른 방어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 리서치기관 딜리전트에 따르면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 수는 2019년 8개사에서 2023년 77개로 급증했다.

최근엔 행동주의펀드 뿐만 아니라 일반 기관투자자나 개인 투자자들도 수익률 제고의 수단으로 행동주의 전략을 표방하면서 기업에 대한 공세는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경제8단체는 최근 입장문에서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재계에선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적극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이즌 필은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차등의결권 주식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 부여해 지배권을 보장하는 주식을 말한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은 공식적으로 경영권 방어 제도가 없어 기업의 개별적인 대응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채 자사주 소각만 의무화 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을 투자자본에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