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⑪'거인' 인텔 만드는 아일랜드 스타트업...대박난 정부 주도 '혁신 생태계'
[아일랜드는 섬이 아니었다] 'EI' 업은 아일랜드 스타트업, 10년 만에 6배 성장
더블린=최유빈,
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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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저성장과 산업 전환의 갈림길에 선 한국 경제가 해법을 찾지 못하는 사이, 인구 530만의 아일랜드는 개방과 혁신 전략으로 유럽의 '작은 호랑이'(Celtic Tiger)로 부상했다. 낮은 법인세를 축으로 한 외국인 투자 유치, 토종기업을 세계무대에 올려세운 스타트업 지원, 노사정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 모델 등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성장의 동력으로 꼽힌다. 글로벌 빅테크와 제약 기업들이 몰린 더블린의 산업 클러스터는 한국이 직면한 저성장·고비용 구조를 돌파할 대안으로 주목된다. 아일랜드 경제 기적의 현장에서 위기의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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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칩을 만들고, 넥살러스는 인텔을 만든다."
글로벌 반도체 거인 인텔과 협업하는 아일랜드 스타트업 '넥살러스'(Nexalus)를 상징하는 말이다. 한때 실험실에 머물던 이 회사의 액체 냉각 기술은 이제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떠올랐다.
넥살러스의 기술은 단순한 냉각 솔루션을 넘어 고성능 칩이 최적의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감싸는 '베갯잇'과 같다. 칩 위로 직접 냉각액을 분사해 막대한 열을 잡고 회수된 열은 다시 에너지로 활용한다. 인텔이 벌이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전쟁의 후방을 아일랜드의 작은 스타트업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변방에서 중심으로…10년 만에 6배 성장
넥살러스의 성공은 아일랜드 스타트업 생태계의 약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아일랜드는 지난 10여년 사이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스타트업 허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벤처캐피털 데이터 플랫폼 '딜룸'(Dealroom)에 따르면 아일랜드 스타트업의 누적 투자 유치액은 2015년 약 5억달러(약 7100억원)에서 2024년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돌파하며 6배 가까이 급증했다.성장세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아일랜드 기업 307개가 유치한 투자금은 총 9억7800만유로(약 1조6000억원)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이 중 가정용 건강 테스트 키트 업체 '렛츠겟체크드'(LetsGetChecked)는 1억5000만유로(약 25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특히 여성 창업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여성 스타트업 투자 유치 부문에서 유럽 2위를 기록했다. 투자액은 전년 대비 39% 늘어난 2억유로(약 3300억원)에 달하며 지난 10년간 꾸준히 상위 5개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혁신 기업들의 성장은 수출 확대로 이어졌다. 아일랜드 기업진흥청(Enterprise Ireland, 이하 EI)은 지난해 토종 기업 수출액이 367억5000만유로(60조6000억원)로 전년 대비 7%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유럽향 수출(106억3000만유로)이 처음으로 영국(105억2000만유로)을 넘어서며 고질적인 영국 의존도를 탈피하고 시장 다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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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뒤엔 '동반자' EI…떡잎부터 알아본다
아일랜드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심에는 정부 기관인 기업진흥청(Enterprise Ireland, 이하 EI)이 있다. EI는 단순한 지원 기관을 넘어 창업부터 글로벌 확장까지 전 과정을 함께하는 '동반자' 역할을 한다. 유망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고 프리시드 펀드와 벤처캐피털(VC)을 연결해 초기 자금 확보를 돕는다. 전 세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시장 진출과 수출 판로 개척도 지원한다.안나 마리 터리 EI 총괄은 "우리는 고성장 유망 스타트업(HPSU) 투자와 프리시드 펀드, 그리고 탄탄한 VC 생태계를 기반으로 창업가들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도록 돕는다"며 "특히 포용적이고 긴밀하게 연결된 비즈니스 환경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I의 대표 프로그램인 HPSU(High Potential Start-Up)는 기업이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 때부터 자금과 멘토링을 제공한다. 시장 조사, 비즈니스 모델 수립, 글로벌 확장 전략까지 전 주기에 걸쳐 밀착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터리 총괄은 "EI는 2025~2029년 전략 '아일랜드를 위한 성과, 세계를 선도하다'(Delivering for Ireland, Leading Globally)를 통해 2029년까지 수출액 500억유로 달성과 1000개 신규 스타트업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수출 기업을 아일랜드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EI 덕분에 글로벌 기업과 연결"…선순환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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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개한 넥살러스가 바로 HPSU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EI는 넥살러스가 초기 연구개발 단계에 있을 때부터 비즈니스 전략 수립을 돕고 직접 투자자로 참여했다. 덕분에 넥살러스는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협력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케너스 오마호니 넥살러스 최고경영자(CEO)는 "EI는 넥살러스가 콘셉트 단계에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조력자였다"며 "전담 담당자를 통해 상업 계약, 자금 조달 등 핵심 분야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EI의 자금 지원 덕분에 연구개발을 중단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면서 "투자업계에서 명망 높은 EI의 지원은 그 자체로 보증수표가 되어 글로벌 대기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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