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가 202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53~61%로 정하며 석유화학 업계가 3중고에 시달리게 됐다. /사진=제미나이


정부가 11일 국무회의를 통해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61%로 확정하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우려가 커졌다. 당초 산업계는 48% 감축을 요구했지만 예상을 웃도는 최종안으로 정해졌다. 대표적인 다탄소 배출 업종인 석유업계 관계자는 "NDC 기준이 산업계 요구보다 높아 탄소 포집 시설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 위기에 놓인 석유화학 업계가 탄소 감축에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해 실제 감축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중국발 저가 공세로 국내 석유화학 기업은 에틸렌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다. 정부는 이에 산업 재편을 요구하며 다음 달까지 자구안 제출을 요청했다. 지난 5년간 전기 요금이 75% 상승하며 공장 가동 비용도 늘었다.

이날 석유화학 업계는 "3중고에 빠졌다"며 정부 정책 방향이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 최종안에 따르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억8950만톤(61%)에서 3억4890만톤(53%) 사이로 맞춰야 한다. 확정된 '제4차 계획기간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계획'도 산업계 부담을 키운다. 2030년까지 25억3730만톤 이내로만 배출할 수 있게 했는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 탄소배출권 구매를 늘려야 한다. 향후 5년간 다탄소 업종 주요 18개 기업의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은 약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석유화학 업계의 어려움은 2021년 중국의 에틸렌 설비 증설을 기점으로 심화됐다. 에틸렌은 플라스틱·섬유·반도체 소재 등 산업 전반에 필수 원료다. 하지만 중국이 에틸렌 생산을 늘리며 저가 공세에 나서자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특히 공장 건설 비용이 커 가동률이 손익분기점인 85%를 넘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공장 가동률은 75% 수준이다. 생산을 늘릴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에틸렌 생산 거점인 여천 NCC가 지난 3년간 적자폭을 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8월 국내 에틸렌 생산을 270만~370만톤 자율적으로 줄이라고 기업들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 권고에 회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재편안에 실망감이 크다"며 "적어도 산업단지별로 감축량을 할당해야 하는데 자율로 두면 기업들이 눈치만 본다"고 말했다. 이는 에틸렌 사업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에틸렌 산업은 진입 장벽이 높아 특정 기업이 정부 방침에 따라 생산을 멈추면 그 기업을 제외한 생산 체계가 고착화될 수 있다.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내년 지방선거가 거론된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산단은 대산·울산·여수 등이 대표적인데 특정 산단을 지정해 감축량을 정하면 지역 반발이 심할 것"이라며 "에틸렌 생산 감축과 기업 재편에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인력 감축이 발생하면 지방선거에서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석유산업 재편이 지금처럼 흘러가면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전기 요금 문제도 석유화학 업계의 오랜 고민거리다. 공장이 24시간 가동되는 특성상 지난 5년간 산업용 전기 요금이 오를 때마다 부담이 커졌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전기 요금이 시간대별로 다르고 요일별로도 차등이 있는데 그 체계를 조정해 부담을 완화하길 업계가 바란다"며 전기 요금 인상에 따른 부담 경감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