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는 부의 축적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고 그 부를 다음 세대에 어떤 방식으로 이전하고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한 사회의 가치 판단이 고스란히 반영된 세목이다. 첨부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챗GPT 제작 이미지


상속세는 부의 축적 과정과 그 부를 다음 세대에 어떤 방식으로 이전하고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한 사회의 가치 판단이 반영된 세목이다. 불로소득에 대한 인식부터 세대 간 부의 이전을 대하는 태도,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어디에 방점을 둘 것인지에 대한 '시대'의 선택이 상속세에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고율 상속세 국가다. 최고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최대주주 할증과세(경영권 프리미엄) 20%를 더할 경우 명목 최고세율은 60%에 달해 세계 1위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왜 이렇게 높아졌을까. 한국의 고율 상속세는 재산 축적 과정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반(反)재벌 정서' 등을 배경으로 유지돼 왔다. 정당성을 의심받는 부를 환수하고 불평등의 대물림을 제어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발현된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자산 형성 과정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기업의 연속성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부각되면서 고율 상속세 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재산 축적 과정 불신에 묶인 고율 상속세


상속세에는 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한 사회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그래픽은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 변천사. /그래픽=김성아 기자


고율 상속세의 뿌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가 재정경제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1934년 도입한 '조선상속세령'이 한국 상속세 제도의 출발이다. 이후 1950년 국회가 '상속세법'을 제정·공포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상속세 체계가 처음 마련됐다.


초기 상속세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최대 90%에 이르는 이례적으로 높은 세율이었다. 이 같은 고율 과세에는 해방 전후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됐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혼란을 틈타 형성된 재산을 정당한 부로 보기 어려워 상속 재산은 환수·조정의 대상이라는 시각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다.

일제 수탈의 여파로 국고가 고갈된 상황에서 세수 확충은 정부에게 시급한 과제였다. 하지만 소득세 과세 체계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데다 탈세도 흔해 개인의 소득 흐름을 추적하긴 쉽지 않았다. 재산이 한눈에 드러나는 상속 시점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정부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이후 상속세 최고세율은 점진적으로 낮아졌다. 1억환(환은 1962년 통화개혁 이전에 사용된 화폐 단위로 이후 10환이 1원으로 바뀜) 초과 상속 재산에 대해 1955년에는 최고 55%, 1960년에는 최고 30%의 세율이 적용됐다. 당시 확산되던 경제 자유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박정희 정부 들어 고율 과세 기조는 다시 강화됐다. 국가가 경제 성장을 주도하던 후발 산업국 단계에서 자본 세습을 억제하고 성장 동력을 관리할 필요가 있어서다. 또 이 시기는 경제성장에 따른 재정 수요가 확대되고 국방비 지출도 크게 늘어난 때였다. 그 결과 상속세 최고세율은 1967년 70%, 1974년에는 75%까지 다시 인상됐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지금과 비슷해진 건 1988년(최고세율 55%)이다. 금융·부동산 실명제 시행으로 세원 포착이 용이해지자 1996년에는 최고세율이 45%로 인하됐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상속세 강화 기조가 재부상했고 1999년 상속세 최고세율은 다시 50%로 상향됐다. 외환위기에 따른 실물자산 가격 하락이 반영돼 과세표준 구조도 조정됐는데 최고세율 적용 구간은 기존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아졌다.
상속세 부담 완화가 곧 '부자 감세'로 비칠 수 있다는 인식 속에서 여론을 의식한 정치권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탓에 상속세 개편 논의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번번이 표류해 왔다. 사진은 지난해 12월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적 300인 중 재석 281인, 찬성 98인, 반대 180인, 기권 3인으로 부결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이렇게 정해진 세율은 2000년 1월부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후 20여년 동안 상속세 개편 논의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번번이 표류해 왔다. 상속세 부담 완화가 곧 '부자 감세'로 비칠 수 있다는 여론을 의식한 정치권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탓이다. 하지만 자산 형성 과정의 투명성이 높아진 데다 100년 기업의 육성과 부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선 동결된 상속세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기업 및 개인이 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강했다"며 "상속 단계에서 과세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의 축적 전반에 제대로 과세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작동했다"고 했다. 이어 "금융실명제 도입과 과세 인프라 고도화로 자산 형성 과정이 과거에 비해 투명해졌고 부의 축적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도 이전보다 강화됐다"며 "글로벌 스탠다드까지 감안하면 상속세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