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뒤흔든 관세 위기는 현대차에 위기이자 글로벌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분기점이 됐다. 사진은 지난 5일 기아 80주년 기념 행사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발표하던 모습. /사진=기아


미국발 관세 폭풍은 올해 현대차의 경영 환경을 급변시킨 최대 변수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투자와 외교를 앞세워 승부수를 던졌고 그 과정에서 대미 전략 전반이 시험대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던 한국 완성차 업계에는 '관세 쇼크'였다. 일본과 유럽연합(EU)산 차량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되면서 대미 수출 비중이 큰 현대차·기아의 부담은 커졌다.

현대차그룹은 가격 인상 대신 관세 비용을 자체 흡수하는 전략을 택했다.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관세 부과 이후 현대차 1~11월 미국 판매는 89만6620대로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했고 기아도 77만7152대로 7.5% 늘었다. 판매 가격을 동결한 채 하이브리드와 SUV 중심으로 외형 성장을 이어간 것이다.


하지만 수익성은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2분기 관세 영향으로 현대차는 8282억원, 기아는 7860억원의 영업이익 감소를 기록했고 3분기까지 누적 손실은 약 4조6000억원에 달했다. 현대차의 3분기 매출은 46조7214억원으로 분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고 기아 역시 28조6861억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냈지만 관세 비용이 반영되며 영업이익률은 각각 5%대까지 떨어졌다. 매출과 판매는 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눈에 띄게 하락한 것이다.

정 회장은 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다. 부과 직후부터 정상외교 일정에 맞춰 경제사절단에 동행하고 미국 정부·의회·주 정부를 상대로 대미 투자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설명하며 관세 완화 필요성을 직접 설득했다. 정 회장은 자동차 생산과 부품·물류·철강, 미래 산업을 포함해 총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제시하며 관세 인하의 명분을 쌓았다.


협상은 하반기 들어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한미 간 관세 인하에 대한 큰 틀에서의 합의가 이뤄진 데 이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최종 타결에 도달했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결정했고 인하된 관세율은 11월 1일 기준으로 소급 적용됐다. 4월 이전까지 무관세 상황보단 아쉽지만 일본과 EU와 동일한 관세선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복원된 것이다.

관세 인하 효과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관세율이 15%로 낮아진 이후 현대차의 연간 관세 부담은 약 6조원에서 3조6000억원 수준으로, 기아는 5조원에서 3조원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단순 합산하면 연간 4조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다. 단기적으로는 4분기 이후 실적 반등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동안 가격 인상 없이 관세를 떠안아온 전략이 일정 부분 보상받는 셈이다.


관세 리스크는 현대차의 중장기 전략에도 변화를 재촉했다. 그룹은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 차량 가운데 현지 생산 비중은 약 40% 수준이지만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해 2030년까지 8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