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세계 수소박람회('WHE 2025') 현대자동차그룹 부스에 전시된 현대제철 루이지애나 제철소 모형도./사진=김대영 기자


미국이 철강을 국가안보 품목으로 지정하고 한국산 철강에 50% 고율 관세를 유지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대미 수출 전략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관세 회피를 위해 현지 생산과 공급망 재편이 대안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다.


철강관세 인하은 지난 10월 한미 관세협상에서 끝내 제외되며 수출에 의존하던 국내 철강사들의 채산성(비용 대비 이익) 악화 우려가 현실화됐다. 이에 업계 라이벌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공동 대응에 나섰다. 16일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과 함께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EAF) 제철소를 건설하기로 확정했다. 관세 장벽 우회를 위해 '적과의 동침'을 택한 것이다.

총 투자 규모는 58억달러(약 8조3520억원)에 달한다. 연산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로 현대제철이 자기자본 29억달러와 외부 차입 29억달러를 각각 절반씩 조달하는 구조다. 지분은 현대제철이 50%(약 2조1000억원)로 최대주주를 맡고 포스코가 20%를 확보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미국 법인이 각각 15%씩 참여한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자동차 강판 생산에 특화된 설비로 건설될 예정이다. 연간 270만톤의 열연, 냉연 및 냉연 도금 판재류를 생산하여 현대차·기아의 미국 현지 공장(HMGMA) 등에 공급할 계획이다. 관세 부담, 해상 운송에 따른 물류비, 환율 리스크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기존 수출 중심 구조에서 현지 생산·공급 체제로의 전환이다.
지난 4일 최초로 공개된 현대제철 미국 전기로 제철소 모형. /사진=현대제철


공정 방식도 기존과 다르다. 전통적인 고로 방식이 아닌 직접환원철 생산설비(DRP)와 전기로를 직접 연결해 원료를 투입하는 구조를 채택한다. 직접환원철 투입 비중을 확대해 자동차 강판과 같은 고급 판재류 생산에 적합하도록 설계됐다.

쇳물 제조 과정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 방식에 비해 탄소 배출을 약 7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 환경 규제와 친환경 기준을 충족하면서 북미 지역 완성차·가전 업체들 사이에서 저탄소 강판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한 설계다.


현대제철은 이번 투자에 따른 재무 부담이 지분율 50% 기준 약 2조원 수준으로 2028년까지의 현금 흐름을 감안하면 내부 현금창출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포스코그룹도 전기로 기반의 현지 생산거점을 확보해 미국 관세 장벽을 우회하고 북미 지역에 탄소저감 철강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보호무역 강화와 탄소 규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환경에서 단독 대응보다 합작 투자를 통한 리스크 분산 및 공급망 현지화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