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포탈 목적 해외자금을 세탁한 과정/사진=남해해양경찰청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원양어선 선장 등 국내 핵심 고급 해기 인력을 "세금을 내지 않게 해주겠다"고 꼬드겨 해외로 빼돌린 불법 송출 일당이 해경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원양어업의 핵심인 어장 정보와 조업 노하우까지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은 선원법과 금융실명법 위반 등의 혐의로 무등록 선원 송출 업체 대표 A씨 등 일당 3명을 검거해 주범 A씨와 B씨 2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29일 밝혔다.

해경에 따르면 A씨 등은 2020년 11월부터 올 5월까지 국내 베테랑 원양참치어선 선장과 기관장 등 고급 사관 44명을 모집해 필리핀 현지 선사에 불법 취업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선원 34명으로부터 취업 알선 대가로 1인당 5000~3만달러씩 총 44만달러(한화 약 5억8000만원)를 챙겼다.


조사 결과 이들은 국내 선박관리업체로 위장 등록한 뒤 고액의 연봉을 받는 원양어선 사관들에게 접근했다. 연봉 5억~12억원에 달하는 선장들의 경우 국내 세율 적용 시 소득의 최대 4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점을 악용해 "해외 선사에서 받은 급여를 차명계좌나 유령법인 계좌로 들여와 세금을 피하게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실제로 이들에게 포섭된 선원들은 급여를 가족이나 지인 명의의 차명계좌로 받거나 필리핀 현지 환전업자를 통해 이른바 '환치기' 수법으로 국내에 반입했다.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1회 송금액을 1만달러 이하로 나누는 '쪼개기 송금' 방식도 동원됐다.


해경은 이 같은 수법으로 국내로 반입된 자금이 총 370억원에 달하며 이 중 확인된 탈세액만 1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해경은 불법 송금에 가담한 선원 38명과 대포통장을 대여해 준 유령법인 대표 8명도 금융실명법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더 큰 문제는 인력 유출과 함께 국내 원양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유출된 인력들은 수십 년간 참치잡이 배를 타며 어장 정보, 해류 분석, 집어 기술 등 고도의 노하우를 축적한 베테랑들이다.


해경 관계자는 "한국보다 원양어업에 늦게 뛰어든 필리핀, 대만, 중국 등 경쟁국으로 숙련된 선장들이 유출되면서 핵심 조업 기술까지 함께 넘어갔다"며 "이로 인해 국내 원양산업의 경쟁력이 추락하고 수출 실적이 악화되는 등 업계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테랑 선장들의 해외 유출은 2019년 약 38명에서 2025년 약 120명으로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선장과 기관장, 항해사 등이 팀을 이뤄 통째로 이직하는 일명 '패키지 이탈'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어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해경은 필리핀 외에도 대만, 중국 등으로 선원들이 불법 송출되는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