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거장' 샤넬, 끝내 고국땅 밟지 못한 채 숨져 [오늘의역사]
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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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월10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리츠 호텔에서 20세기 패션계의 큰 별 가브리엘 샤넬이 숨을 거뒀다. 명품 브랜드 샤넬 설립자이자 향수부터 가방, 의류까지 20세기 여성 패션계 1인자로 불린 샤넬은 이날 87세로 별세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성공한 디자이너
샤넬은 어린 시절 집안의 가난으로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시골 마을에서 바느질 노동자로 일했다. 당시 그를 후원한 장교 덕에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됐다.
샤넬은 모자가게 개업으로 패션업을 처음 시작했다. 그는 파리에서 '샤넬모드'라는 모자 전문점을 개업했고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모자가게가 흥하자 샤넬은 복장 사업도 진출한다. 샤넬은 당시 코르셋 복장을 하던 여성들에게 코르셋이 없는 자유로운 복장을 선사했고 이를 계기로 샤넬은 패션사에 다시 없을 한 획을 긋게 됐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샤넬은 조향사 에른스트 보와 함께 첫 향수 'NO.5', 'NO.22'를 발표한다. 모자, 샤넬 슈트, 향수 등 다양한 상품을 디자인하며 그는 점차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진 후 그는 15년 동안 프랑스 패션계를 떠났다. 당시 전쟁에 징집된 조카가 결핵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독일군 포로로 잡혀 있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샤넬에게 있어 사망한 여동생의 자녀는 자기 자식과 다름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파리 패션계로 복귀한 샤넬은 이전과 달리 혹평받았다. 이에 샤넬은 미국에 진출해 패션 혁명을 일으킨다. 당시 발표된 샤넬 패션이 현재도 큰 사랑을 받는 트위드였다.
히틀러 지지했던 샤넬, 결국 스위스에 묻혀
샤넬은 197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산책을 다녀온 그는 가슴이 답답하다며 가정부에게 창문을 열라고 말한 후 침대에 누웠다가 그대로 숨을 거뒀다.샤넬이 숨진 후 프랑스는 그가 전범 재판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국 땅에 묻히는 것을 불허했다. 결국 그는 망명지였던 스위스 로잔에 묻혔다.
샤넬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나치와 히틀러를 지지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샤넬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그는 나치를 이용해 유대인이었던 자신의 동업자를 사업에서 퇴출시키는 등 나치에 협력한 정황이 있어 전쟁 이후 1급 부역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조카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협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치 전범이 된 샤넬은 당시 친분이 있던 윈스턴 처칠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로 도피한 후 삶의 마지막까지 고국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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