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사진제공=경기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과 함께 거세진 고관세의 파고가 국내 산업계의 핵심 보루인 반도체 전선을 정조준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AI 기반 제조 혁신, 그리고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산업지형의 변화 속에서 핵심 기술의 자립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됐다.


치솟는 환율과 통상 환경 급변이라는 이중고 속에 경기도 평택과 용인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대한민국 경제의 실질적인 '환율 방어선'이자 '기술 독립군'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소부장 수출입 변화 및 무역수지 추이. /자료제공=산업통상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반도체는 한국의 대표적 수출 효자 품목이지만, 핵심 장비의 70%가량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고환율이 오히려 시설 투자를 가로막는 '비용 폭탄'이 되는 역설적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약 20%,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전체 자립화율은 30%대에 머물러 있다. 환율이 10원만 올라도 기업들이 수천억 원의 추가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취약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경기도는 공급망을 국내로 내재화하는 '환율 면역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메가 클러스터 가동으로 환율충격 흡수

해법은 '공급망의 현지화(Localized Value Chain)'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글로벌 장비 거물들과 국내 강소기업들이 한 울타리에 모이는 '메가 클러스터'가 가동되면 외산 의존도가 낮아지고 안정적인 원화 기반 조달 생태계가 형성된다. 이는 외부 충격을 내부적으로 흡수하는 방벽이 된다.


이미 삼성전자는 평택 고덕에 120조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 기지를 구축했으며, 최근 평택 5공장(P5) 공사를 전격 재개하며 글로벌 전략 거점 도약을 공식화했다. 용인에서는 360조원 규모의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이 2031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 중이며, SK하이닉스 또한 용인 원삼에 122조 원을 투입해 2027년 용지 조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결국 공간적 집적은 대외 환율 변동이라는 외부 충격을 내부적으로 흡수하는 '구조적 면역력'을 완성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경기도가 용인과 평택에 소부장 특화단지를 지정하고 글로벌 외투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해외에 기댄 공급망을 경기 남부라는 거대 요새 안으로 내재화해 어떤 대외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반도체 경제 방벽'을 세우겠다는 전략이다.

삼성·SK '투톱' 중심으로 그려지는 600조 반도체 지도

대한민국 반도체의 새로운 미래를 견인할 거대한 지도는 현재 경기 남부권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 고덕국제화계획지구 일반산업단지에 이미 120조 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메모리 생산 기지를 구축했으며, 최근에는 평택 5공장(P5) 공사를 전격 재개함으로써 신규 파운드리 라인 강화를 통한 글로벌 전략 거점으로의 도약을 공식화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공언한 '5년간 국내 450조 투자' 계획을 뒷받침하는 핵심 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용인에서는 728만㎡ 부지에 총 360조 원이 투입되는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이 조성 중인데, 2031년 완공을 목표로 AI 반도체의 세계적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용인 원삼에 122조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2027년 용지 조성을 마치고 차세대 메모리 분야의 초격차 경쟁력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여기에 판교의 'K-팹리스 밸리'와 화성의 기지가 연결되면서 경기 남부는 설계부터 양산까지 아우르는 거대 반도체 벨트로 묶인다. 현재 ASML,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등 세계적 장비 기업을 포함해 총 92개 기업이 입주했거나 입주를 앞두고 있어 생태계의 중량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거물부터 국산화 선두주자까지…소부장 생태계 총집결

이 거대 생태계의 실핏줄을 담당하는 소부장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클러스터의 중량감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원삼 협력화단지에는 주성엔지니어링, 솔브레인, 원익IPS, ASML 등 반도체 공정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리딩 기업들이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생태계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용인 기흥구의 저스템은 질소 순환 방식으로 습도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글로벌 점유율 80%를 확보했는데, 이는 기술 자립이 곧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진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이상일 시장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단에 입주하는 반도체 산업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50여개,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에는 80여개에서 100여개의 용인의 소부장 투자 규모만 현재까지 약 3조4000억 원에 달한다"며 "단순 집적을 넘어 가치사슬(Value Chain) 구축을 통해 관세 리스크로부터 우리 기업들을 철저히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대기업 외 소부장 기업위한 정책 안전망 가동

경기도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소부장 기업들을 위한 정책적 안전망도 가동 중이다. 2025년 총 2조10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육성자금을 편성했으며, 특히 고관세와 환율 변동으로 타격을 입은 기업을 위해 1000억원 규모의 특별경영자금을 신설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직접 도입한 '환변동보험' 지원사업은 지자체가 보험료를 지원해 중소기업이 환리스크 걱정 없이 R&D에만 전념하도록 돕고 있다. 아울러 '기술 닥터' 제도와 연구장비 사용료 지원 등 현장 중심의 기술 지원을 통해 강소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공급망 자립의 종착지는 단순히 공장을 짓는 외형적 성장을 넘어, 그 안을 채울 전문 인재의 확보와 연구 인프라의 질적 고도화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와 각 지자체는 현장 기업들이 즉각 체감할 수 있는 기술 지원에 전력을 쏟고 있다. 용인시가 한국기계연구원과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등 전문 기관의 연구장비 사용료 지원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은, 고가의 장비가 없어 R&D를 포기하는 중소기업이 없도록 하겠다는 실전적 의지의 표현이다.

평택시 역시 '인재 보국'의 기치를 내걸었다. 정장선 시장은 "평택 브레인시티 내에 카이스트(KAIST) 평택캠퍼스를 중심으로 차세대 반도체 연구 인력 양성의 핵심 기지를 구축할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들이 먼저 찾아오는 세계적 수준의 R&D 거점을 완성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번 K-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전략의 본질을 '국가적 사명'으로 정의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가 추진하는 반도체 대전환은 단순한 지역 개발 차원을 넘어, 거대한 통상 파고 속에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지켜낼 방파제를 세우는 프로젝트"라고 단언하며, "투자 유치부터 파격적인 금융 지원, 미래 인재 양성까지 전방위적 역량을 결집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승자가 되는 세계 최강의 반도체 심장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