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중개업'마저 실종
주택거래 실종이 남긴 것들/ '춘래불사춘' 공인중개업계
노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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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3~4건 거래 '개점휴업'… 보험·대리기사가 '본업'
"올해 들어 성사시킨 매매 거래가 단 한건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그냥 앉아 있다 퇴근한다고 보면 됩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10여년간 S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해 온 김모씨는 요즘 부쩍 한숨 쉬는 일이 늘었다. 극심한 부동산경기 침체로 주택매매 거래가 실종되면서 이달에만 무려 200만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일년 동안 성사시킨 매매거래 건수는 불과 3건. 5년 전만 해도 한달에 3~4건 이상씩 거래를 성사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법하다. 김씨는 사무실 임대료로 월 평균 150만원 이상 빠져나가는 실정을 고려했을 때 폐업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거래 '뚝' 작년에만 2만여곳 폐업
봄이 찾아왔지만 김씨처럼 여전히 혹독한 추위 속에서 연명하는 공인중개사들이 늘고 있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전국적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진 중개업소가 부지기수다. 부동산시장의 극심한 침체에 따른 주택거래 실종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매매 건수는 73만5414건으로 전년보다 25%나 감소했다. 부동산114 분석 결과 중개사 1인당 주택매매 건수도 2006년 평균 11.3건에서 지난해 3.7건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거래 실종의 후폭풍은 매서웠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만6563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 휴업상태인 곳까지 합하면 2만여 업체가 중개업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신규 업소의 수도 폐업한 업소 수와 비슷해 전체 점포수는 크게 감소하지 않았지만, 중개업소에서 일하던 중개보조인들 대부분이 정리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 업계 종사자는 상당히 줄어든 셈이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는 신규보다 폐업이 더 많아지고 있다. 최근 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중개업소를 양도하겠다는 게시물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쏟아지고 있다.
◆"투잡은 필수, 중개업이 부업"
한때는 공인중개사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개업을 본업으로 삼던 이들도 문을 닫고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중개업소를 폐업한 이들의 평균 나이는 50세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60%였다. 한창 자녀교육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아직 은퇴를 떠올리기엔 이른 나이이기에 부업전선에 뛰어드는 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부부가 운영하는 중개업소의 경우 남편은 대리운전이나 건설현장 노동일에 뛰어들고, 아내는 보험영업이나 식당 서빙을 하는 등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P공인중개업소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올해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대리운전으로 올리는 수입은 한달에 약 30만원. 큰돈은 아니지만 요즘 같이 어려운 상황에선 이마저도 절실하다.
보험업에 뛰어든 중개사들도 상당하다. 부산에서 10년째 R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정모씨는 "임대료라도 건지자는 심정으로 보험영업을 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부동산114는 3년 전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미래에셋생명을 통해 부동산재무상담사 교육을 실시, 350여명의 보험상담사를 배출해내기도 했다. 생계유지가 어려운 회원 중개사들의 숨통을 트여주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업소의 공간을 줄이고 그 대신에 카페나 인테리어업소를 운영하는 등 사실상 전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점포 밖에 신발이나 학용품 등 잡화를 내놓고 파는 업소부터 은행 ATM 기계를 놓고 임대료를 받는 중개업소까지 등장했다. 간판만 중개사무소인 곳이 허다해진 것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중개업이 부업이 돼 버렸다"라고 입을 모았다.
◆중개사협회는 뭐 하나
부동산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부채 증가 및 실업률 증가, 물가상승 등으로 주택 구매력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공인중개사협회는 최근 8만3000여명 회원들의 영업권을 보호하고 부동산 활성화를 위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중개업계 영업권 보호를 위해 ▲공인중개사 쿼터제(등록정수) 도입 ▲공인중개사 수습제도(인턴) 도입 ▲부동산컨설팅·분양대행업의 중개업자 전속업무 규정 등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부동산거래 활성화 방안으로는 ▲취득세 감면 연장 ▲다주택자 및 비사업용 토지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협회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히려 일각에선 "고액의 등록금 및 회비를 받는 협회가 이제까지 회원들의 권리를 위해 이룬 것이 무엇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공인중개사협회 무용론'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실제 얼마 전 새로 취임한 이해광 제10대 공인중개사협회장은 취임 이후 한달 가까이가 지났지만 언론을 기피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취임사 때의 각오와는 동떨어진 협회장의 행보에 생사의 기로에 놓인 중개사들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중개사들의 힘든 현실을 반영하듯 한때 '국민 자격증'으로 불리던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도 계속 줄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2009년 15만5024명(2차 접수 기준)이던 접수자는 2011년 8만6179명으로 급감했고, 지난해는 7만1067명으로 줄었다. 모 학원 관계자는 "방학이면 수강생들로 넘쳐났던 학원이 지난 겨울방학 때는 썰렁해졌다"며 "중개업 불황을 학원에서도 실감한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의 봄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올해 들어 성사시킨 매매 거래가 단 한건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그냥 앉아 있다 퇴근한다고 보면 됩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10여년간 S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해 온 김모씨는 요즘 부쩍 한숨 쉬는 일이 늘었다. 극심한 부동산경기 침체로 주택매매 거래가 실종되면서 이달에만 무려 200만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일년 동안 성사시킨 매매거래 건수는 불과 3건. 5년 전만 해도 한달에 3~4건 이상씩 거래를 성사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법하다. 김씨는 사무실 임대료로 월 평균 150만원 이상 빠져나가는 실정을 고려했을 때 폐업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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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머니투데이 |
◆거래 '뚝' 작년에만 2만여곳 폐업
봄이 찾아왔지만 김씨처럼 여전히 혹독한 추위 속에서 연명하는 공인중개사들이 늘고 있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전국적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진 중개업소가 부지기수다. 부동산시장의 극심한 침체에 따른 주택거래 실종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매매 건수는 73만5414건으로 전년보다 25%나 감소했다. 부동산114 분석 결과 중개사 1인당 주택매매 건수도 2006년 평균 11.3건에서 지난해 3.7건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거래 실종의 후폭풍은 매서웠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만6563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 휴업상태인 곳까지 합하면 2만여 업체가 중개업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신규 업소의 수도 폐업한 업소 수와 비슷해 전체 점포수는 크게 감소하지 않았지만, 중개업소에서 일하던 중개보조인들 대부분이 정리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 업계 종사자는 상당히 줄어든 셈이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는 신규보다 폐업이 더 많아지고 있다. 최근 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중개업소를 양도하겠다는 게시물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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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은 필수, 중개업이 부업"
한때는 공인중개사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개업을 본업으로 삼던 이들도 문을 닫고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중개업소를 폐업한 이들의 평균 나이는 50세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60%였다. 한창 자녀교육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아직 은퇴를 떠올리기엔 이른 나이이기에 부업전선에 뛰어드는 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부부가 운영하는 중개업소의 경우 남편은 대리운전이나 건설현장 노동일에 뛰어들고, 아내는 보험영업이나 식당 서빙을 하는 등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P공인중개업소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올해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대리운전으로 올리는 수입은 한달에 약 30만원. 큰돈은 아니지만 요즘 같이 어려운 상황에선 이마저도 절실하다.
보험업에 뛰어든 중개사들도 상당하다. 부산에서 10년째 R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정모씨는 "임대료라도 건지자는 심정으로 보험영업을 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부동산114는 3년 전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미래에셋생명을 통해 부동산재무상담사 교육을 실시, 350여명의 보험상담사를 배출해내기도 했다. 생계유지가 어려운 회원 중개사들의 숨통을 트여주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업소의 공간을 줄이고 그 대신에 카페나 인테리어업소를 운영하는 등 사실상 전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점포 밖에 신발이나 학용품 등 잡화를 내놓고 파는 업소부터 은행 ATM 기계를 놓고 임대료를 받는 중개업소까지 등장했다. 간판만 중개사무소인 곳이 허다해진 것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중개업이 부업이 돼 버렸다"라고 입을 모았다.
◆중개사협회는 뭐 하나
부동산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부채 증가 및 실업률 증가, 물가상승 등으로 주택 구매력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공인중개사협회는 최근 8만3000여명 회원들의 영업권을 보호하고 부동산 활성화를 위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중개업계 영업권 보호를 위해 ▲공인중개사 쿼터제(등록정수) 도입 ▲공인중개사 수습제도(인턴) 도입 ▲부동산컨설팅·분양대행업의 중개업자 전속업무 규정 등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부동산거래 활성화 방안으로는 ▲취득세 감면 연장 ▲다주택자 및 비사업용 토지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협회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히려 일각에선 "고액의 등록금 및 회비를 받는 협회가 이제까지 회원들의 권리를 위해 이룬 것이 무엇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공인중개사협회 무용론'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실제 얼마 전 새로 취임한 이해광 제10대 공인중개사협회장은 취임 이후 한달 가까이가 지났지만 언론을 기피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취임사 때의 각오와는 동떨어진 협회장의 행보에 생사의 기로에 놓인 중개사들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중개사들의 힘든 현실을 반영하듯 한때 '국민 자격증'으로 불리던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도 계속 줄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2009년 15만5024명(2차 접수 기준)이던 접수자는 2011년 8만6179명으로 급감했고, 지난해는 7만1067명으로 줄었다. 모 학원 관계자는 "방학이면 수강생들로 넘쳐났던 학원이 지난 겨울방학 때는 썰렁해졌다"며 "중개업 불황을 학원에서도 실감한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의 봄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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