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는 물의 神이요 물은 茶의 禮이니, 眞水가 아니면 그 神이 나타나지 않고 精茶가 아니면 그 禮를 엿볼 수 없다.” 19세기 조선시대 차의 대가였던 초의 선사의 글을 통광 스님이 엮은 초의다선집의 내용 중 일부다. 의역하면 “차는 물의 신이 되고 물은 차의 본체가 된다. 

유천 또는 석지 등의 진수가 아니면 차의 싱그러움이 나타나지 않고, 법제에 따른 정다가 아니면 물의 본체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물이 좋아야 차 맛이 좋다” 라는 것이다.

차는 차나무의 덖은 잎을 뜨거운 물로 우려낸 것이고, 커피는 커피나무의 볶은 씨앗을 분쇄한 후 뜨거운 물로 우려낸 것이다. 즉 차와 커피는 잎과 씨앗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둘 다 뜨거운 물로 우려내 마시는 음료라는 점에서는 일맥 상통한다. 
▲ 제공=구대회 커피테이너(커피꼬모 대표)
▲ 제공=구대회 커피테이너(커피꼬모 대표)

재료인 찻잎과 커피 씨앗의 품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를 우려내는 물 또한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맛과 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커피를 직업으로 갖기 전, 집에서 다반, 다완, 다호 등 다기를 갖춰놓고 차 생활을 한참 동안 즐겼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차라도 물에 따라 그 맛이 달랐다는 점이다. 나뿐 아니라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즉 차꾼들은 특정 브랜드의 생수를 선호해 차를 마실 때 꼭 그 물을 사용했다.

우리가 흔히 생활에서 쓰고 마시는 담수는 그 속에 녹아있는 칼슘과 마그네슘의 함량(경도)에 따라 연수, 중경수, 경수로 구분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물 1리터 속에 경도가 100mg미만이면 연수, 101~300mg이면 중경수, 301mg이상이면 경수로 정하고 있다. 

연수를 단물이라 하고, 경수를 센물이라고도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는 까페에서 무기물질이 많이 함유된 경수를 쓸 경우, 기계 내부 관 등에 스케일이 생겨 잦은 고장의 원인이 된다. 

다행히 우리나라 수도물의 경우, 경도가 100미만이라 기계고장에 대한 부담은 덜 하지만, 잔류 염소와 칼슘은 커피의 성분과 반응해 맛과 향을 떨어뜨린다. 염소는 0.3mg/L만 있어도 커피의 향기성분을 산화시키며, 칼슘은 커피의 유기산과 결합해 좋은 신맛을 중화시킨다. 

따라서 커피의 맛과 향을 고려한다면, 에스프레소 머신과 수도관 사이에 정수기를 연결하고 주기적으로 필터를 교체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염수가 아닌 담수는 무색, 무취, 무미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담수인 강물, 시냇물, 계곡물, 우물물, 지하수, 수도물 등은 무색이기는 하나 무취, 무미하지 않으며 어지간히 감각이 둔한 사람이 아니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시중에서 파는 생수도 브랜드와 취수원에 따라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 전문가들은 이를 심미적 차이일 뿐 실제 물맛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마시는 사람이 그 차이를 느끼고 선호하는 생수를 구매하므로 이를 부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기계고장과 염소 등의 제거를 위해 정수된 물을 사용한다 해도 핸드드립 커피나 더치 커피는 어떤 물로 추출해야 맛이 좋을까? 얼마 전 지인의 부탁을 받고 실제로 물의 종류의 따른 커피 맛 테스트를 실시했다. 

실험을 위해 브랜드뿐 아니라 취수원이 확연히 다른 두 가지 생수, 수도물(아리수), 정수된 물을 사용했다. 실험 결과 수도물의 경우, 잔류염소 때문에 다른 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향이 조금 떨어졌다. 

또한 다른 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칼슘은 커피의 신맛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수된 물의 경우, 다행히 수도물의 단점은 없었으나, 무기물질까지 걸려내 생수에 비해 무미건조한 맛이 났다. 생수의 경우, 칼슘의 함량이 낮고 부드러운 물맛을 내는 칼륨과 마그네슘이 함량이 높은 제품이 커피의 맛과 향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커피 맛을 조금 더 높이고 싶다면 이제 물의 선택도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