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그룹이 차기회장 선임 작업에 나섰다. 아직 최종후보자로 누가 낙점될지는 알 수 없지만 금융권에서는 내부출신이 선임돼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다. KB금융이 이미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수차례 겪은 상황인 만큼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르고 그룹 운영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내부출신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후보군 레이스를 보면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과 하영구 씨티은행장 등 외부출신 금융인들이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이 가운데 이 전 부회장은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금융인들의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따라서 KB금융의 고질병으로 인식되는 이른바 '줄대기' 인사정책이 또 다시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차기회장 후보군 6명 압축… 10월 말 윤곽 나올 듯

KB금융 차기회장 후보군은 사실상 6명으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 9월2일 84명의 후보군 가운데 1차 후보로 9명을 뽑았다. 김옥찬 국민은행장 대행과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 김기홍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 등 4명의 내부출신과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이동걸 전 부회장, 하영구 행장, 양승우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회장,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 등 5명의 외부출신이 후보군에 올랐다.

이 중 김옥찬 행장대행과 이철휘 사장이 자진사퇴하고 지동현 전 부사장 역시 본선 진출 의지가 미약해 후보군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김 행장대행은 서울보증보험 사장 후보에 올라 KB금융 회장보다 서울보증보험 사장 자리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추위는 아직까지 명확한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은 지 전 부사장을 포함한 7명의 후보군을 외부 전문기관(Search Frim)에 의뢰해 평판조회를 실시 중이다. 평판조회 등을 기초로 2차로 4명을 선정해 심층면접을 진행할 예정이다. 최종후보자는 11월 초 발표할 방침이다.

만약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10월 하순께 최종 회장후보자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4명의 후보군에 대해서는 후보별로 90분 동안 심층면접이 이뤄지며, 인터뷰 종료 후 투표를 진행해 재적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를 최종 회장후보로 선정, 최종 검증을 진행하게 된다.

◆ 전문성이냐 외부 압력이냐… 기로에 선 회추위

KB금융 회추위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까. 아니면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을 받을까.

KB금융 차기 회장 선임 작업을 두고 벌써부터 뒷말이 무성하다.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권의 압력행사가 많았던 까닭에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

실제로 KB금융 내부출신인 김 행장대행이 중도포기를 선언하면서 진흙탕 인선작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후보군은 출신지역이나 학교 등을 무기삼아 정치권에 읍소하고 있다는 설이 흘러나온다. 일명 '모피아'로 통칭되는 관료그룹도 특정인사를 밀어주기 위한 물밑작업에 나섰고 차후 KB금융의 '확실한 관리'를 위해 금융당국 역시 알게 모르게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최종 승자는 누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과거 회추위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며 "결국 전문성보다 정치·관치의 대결로 뽑힌 인사가 KB금융을 또 한번 나락에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내부출신 회장을 요구하는 노조 역시 이번 인선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숟가락을 얹고 있다. 노조는 최근 회추위 위원들을 만나 내부출신 선임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회추위의 독립성 위기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노조와 회추위는 회동에서 차기 회장에 내부출신이 선임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노조와 회추위가 특정인물을 지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이 과거의 리딩뱅크 위상을 되찾기 위해선 공정한 인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과거의 잘못된 악습을 반복한다면 KB뿐만 아니라 정부와 관료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류승희 기자
/사진=류승희 기자

◆ 회장·행장 겸임 여부에도 관심 집중

KB금융 회장 인선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KB국민은행장 선임을 위한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아직 행추위가 결성되지 않았지만 연내에는 차기 행장선임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간의 KB사태로 미뤄볼 때 회장이 행장을 겸임할 가능성이 높다. 혹여 회장과 행장을 분리할 경우 또 다시 CEO 간 권력다툼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회장-행장 분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는 아니다. 우선 첫번째로 꼽히는 것이 지리적 여건이다. KB금융지주는 명동에, KB국민은행 본점은 여의도에 위치해 있다. 이에 따라 회장이 행장을 겸임할 경우 임직원들이 서류 결재를 받으려면 명동과 여의도를 수차례 오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은행 특성상 촌각을 다투는 결재서류가 많은 상황이어서 회장과 행장 겸임은 효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인 정(政)과 관(官)의 영향을 받아 '나눠먹기 식' 인사로 끝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관 주요인사들이 각각 밀어주는 인사를 회장과 행장에 앉혀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KB는 또 한번 회장과 행장 등 CEO 내홍으로 곤욕을 치를 수 있다. 따라서 회장과 행장을 분리할 경우 이사회가 각자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