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수가 해운업을 한다니 웃음이 나시죠? 하지만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원정에 나섰듯 저의 사업적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57)이 ‘알프스산’에 올랐다. 주력시장인 닭고기 유통영역에서 벗어나 국내 벌크선사 부문 1위 해운사인 팬오션 인수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12월17일 하림은 팬오션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 입찰가는 총 1조600억원. 하림은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맺고 팬오션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다.


팬오션(옛 STX팬오션)은 국내 1위, 세계 8위의 벌크 해운사로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다 지난 2013년 6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 1조1892억원, 영업이익은 1576억원을 기록한 회사다.

◆ 곡물유통사업 야심, 국내 넘어 세계로


하림이 팬오션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된 직후 재계의 시선은 온통 김홍국 회장을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곡물유통 위주의 사업을 벌이던 하림이 느닷없이 해운업에 진출하겠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침체국면인 글로벌 해운시장에 1조원대의 거금을 내고 뛰어든 배포에 재계는 또 한번 놀랐다.

하지만 김 회장의 이번 결단에는 나름의 기대심리가 깔려있다. 우선 팬오션 인수를 통해 국제 국물유통 사업영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각오가 결집됐다.


하림은 닭고기 회사로 알려졌지만 사료회사로도 손색이 없다. 전체 4조8000억원의 매출 중 사료부문이 1조4000억원, 닭고기는 1조1000억원이다. 민간기업 가운데 사료생산은 1위다. 그동안 글로벌 곡물유통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하림은 미국과 중국, 필리핀, 베트남에 사료를 수출하면서 아시아지역에서 수요 기반도 넓혀왔다.


 

[CEO] 나폴레옹이 되고픈 닭장수

따라서 향후 곡물 벌크 운송 인프라를 갖춘 팬오션과 결합하면 하림으로서는 국제 곡물유통사업과 관련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림 측도 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 당시 “항만네트워크와 곡물 유통의 경험을 갖고 있는 팬오션과 결합한다면 국내의 안정적 곡물 조달은 물론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동아시아 곡물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하나 김 회장은 팬오션 인수로 국내 곡물유통 사업에서 비용절감 등의 플러스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곡물 자급률은 23.1%로 식량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한다. 특히 사료곡물의 경우 사실상 전량(97.3%)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처지다. 우리나라가 세계 6~7위권의 곡물 수입국이지만 조달 과정에서 해외 곡물유통 기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곡물가격의 절반을 운송료가 차지한다. 심할 때는 곡물 원가와 운송비가 같을 정도로 운송비의 비중이 크다. 때문에 김 회장은 곡물 수송비용을 줄이고 안정적인 운송이 가능하다는 점을 계산해 이번 팬오션 인수를 지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 1조원대 인수자금, 부담 없을까

하림은 이번 팬오션 인수를 위해 '1조600억' 카드를 꺼냈다. 통상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낙찰가가 1조원을 넘어서면 ‘승자의 저주’라는 평가가 잇따르곤 한다. 하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인수 후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더 많은 만큼, 시장의 관심은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하림이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치중돼 있다.

실제로 하림은 팬오션 인수금 1조600억원 중에서 4400억원은 은행차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하림이 인수조건 충족과 팬오션 매입을 위해 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하림과 김 회장은 인수금액 마련에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림 측은 "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실사가 나오더라도 크게 영향받을 것은 없다. 인수에 따른 재무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회장 역시 “하림이 제일홀딩스와 하림홀딩스라는 2개 지주사를 가진 지배구조가 아니라면 계열사 컨소시엄 구성으로 충분히 자력 인수가 가능하다”며 “계열사 유보금 여력만 9000억원 수준이다. 지주사법을 지키다 보니 차입이 불가피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하림그룹의 지주사인 제일홀딩스가 팬오션이 발행하는 신주발행금액 8500억원 중 6800억원을 취득하고 나머지 1700억원은 컨소시엄에 참여한 JKL파트너스가 부담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제일홀딩스는 하림그룹의 최상위 지주사로 (주)하림, 하림홀딩스, 팜스코, 선진 등 4개 상장사의 지분을 보유했다. 이중 하림홀딩스에는 NS쇼핑 지분 40.71%가 있다. NS쇼핑은 현재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며 목표 시가총액은 8500억원인데 하림 측은 내심 1조원까지도 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림의 팬오션 인수를 위한 자금 마련에 팬오션 지분과 함께 제일홀딩스의 하림홀딩스 지분도 주요 담보로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26억' 짜리 나폴레옹 모자, 왜 샀나

/사진=AP, 뉴시스 제공
/사진=AP, 뉴시스 제공


 

최근 김홍국 회장이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든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지난해 11월 그는 프랑스 오세나 경매소에서 실제 나폴레옹이 썼던 모자를 26억원에 사들여 화제를 낳았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평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높이 사왔다. 기업가 정신을 다시한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모자를 구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의 인생여정에서도 도전정신은 묻어난다. 11살때 외할머니께 받은 병아리 10마리를 닭으로 키운 후 시장에 팔고 다시 병아리로 사서 키우기를 반복한 끝에 18살, 자본금 4000만원으로 익산에 양계장을 차렸다.

그러나 1982년 조류독감으로 인해 양계장은 도산했고 김 회장은 식품회사 영업사원 일을 하며 재기를 모색했다. 4년 후인 1986년 양계장 사업에 다시 뛰어든 그는 하림식품을 설립해 사료·사육·가공에 이르는 ‘통합 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2001년에는 천하제일사료를 인수하고 NS홈쇼핑을 설립하는 등 사업 분야를 확대해 하림그룹을 출범시켰다. 현재 하림은 4개 상장사를 포함해 총 83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프로필
전북 익산 출생/이리농림고 졸업/호원대 경영학과 졸업/전북대 경영대학원 석사/황등농장 설립(1978)/하림식품 설립(1986년)/하림 설립(1990)/‘신한국인’ 선정(1993년)/금탑산업훈장(2006)/한국중견기업연합회 규제개혁위원장(2014년)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