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기울고 있다.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병합하고 난 이후부터다.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유럽 등의 서방국가들은 러시아 국영은행과 방위산업체, 에너지업체 등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국제유가 하락도 러시아경제에 풍파를 몰고 왔다. 가스와 원유산업이 수출의 약 70%를 담당하는 상황에서 유가 하락은 러시아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유가가 떨어지니 러시아에 들어가는 외화는 줄고 루블화의 가치도 계속 폭락하는 실정이다. 러시아당국은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급히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월26일(현지시간) 국제신용평가사 S&P는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B+로 강등했다.

무엇하나 호재가 없어 보이는 이때, 일부 투자자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바닥을 친 지금이 매수할 타이밍이라는 의견이 흘러나온다. 과연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지, 아니면 악마의 속삭임일지 러시아 관련 펀드의 동향으로 맥을 짚어봤다.


 

/사진=뉴시스 박문호 기자
/사진=뉴시스 박문호 기자

◆ 에너지 비중 크면 손실률도 커

지난 1월27일 기준 국내에 설정된 러시아 관련 펀드는 총 46개, 순자산은 1733억원으로 조사됐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이날 기준 러시아 주식형펀드의 1년 평균수익률은 -34.21%를 기록했다. 총 27개의 업종·특징·국가별로 나뉜 펀드유형 중 단연 최저치다.

펀드별로 보면 ‘미래에셋인덱스로러시아자(주식)종류C-e’의 1년 수익률이 -38.12%로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전체 운용액에서 주식에 투자한 비중은 지난해 11월 기준 93.82%다. 이 중 러시아주식이 75.13%를 차지한다. 마찬가지로 손실을 면치 못했지만 러시아 관련 펀드 중 가장 낮은 낙폭을 보인 펀드는 ‘키움러시아익스플로러 1[주식]A1’다. 이 펀드의 1년 수익률은 -27.78%다. 주식에 투자한 비율이 91.61%에 달하며 이 중 러시아주식이 79.41%를 차지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국제유가와 관련된 에너지업종에 얼마만큼의 자금을 투입했는지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수출산업에 치중된 러시아경제의 체질상 에너지 관련 기업의 실적이 러시아증시를 좌지우지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고 말한다.


‘토막난’ 러시아 펀드, 지금이 매수기회?

실제 큰 폭의 손실률을 보였던 미래에셋인덱스로러시아펀드는 총 6개의 러시아 에너지 관련 기업에 총 주식운용액 38.01%를 집어넣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손실률을 보인 키움러시아익스플로러펀드는 3개의 러시아 에너지 기업에 21.73%의 자금을 투입했다. 펀드에서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과 손실률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인과관계 속에서 국제유가가 바닥을 다지고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투자자에게 희망을 보여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 1월14일(현지시간) 내놓은 월간 전망에서 유가가 올해 1분기 중 바닥을 다지고 오는 12월에는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67달러, 브렌트유는 배럴당 70달러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지난 6월부터 큰 폭의 내림세를 보이며 떨어지던 WTI 가격은 배럴당 40달러 가까이 다가가자 낙폭을 줄이고 약보합세로 돌아섰다.

◆ 러시아펀드에 투자?… ‘시기상조’

일각에서는 빠질만큼 빠진 지금이 러시아에 투자할 적기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호세 모랄레스 미래에셋자산운용 미국법인 CIO는 “유가 불확실성이 크고 시장 역시 적정가격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며 루블화 역시 이 흐름으로 인해 당분간은 대단히 변동성이 높을 것”이라며 “다만 지금의 가격대와 유가의 하락폭이 과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가와 환율 안정만으로도 시장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투자자의 심리변화를 반영한 듯 울상 짓던 러시아펀드들도 살짝 고개를 들었다. 국제유가가 등락을 반복하며 보합세를 보인 지난 1월20일 기준 러시아펀드의 한주간 수익률은 6.28%로 나타났다. 다른 국가펀드의 평균수익률이 2~3%에 그친 것에 비하면 양호한 성적으로 평가된다. 러시아 RTS지수도 같은 기간 64.72포인트(8.6%)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토막난’ 러시아 펀드, 지금이 매수기회?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를 투자대상으로 고려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현재 러시아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경기지표와 대외변수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3년간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임동민 교보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까지는 러시아의 투자·생산·소비 관련 지표가 둔화되긴 했지만 계속 상승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경기지표마저 급락하기 시작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어 “경기가 불황인 와중에 루블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며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 조짐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임 이코노미스트는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오는 3월부터 러시아가 갚아야 할 외채는 현재 보유한 유동성으로 어느 정도 해결하겠지만 높아진 금리 때문에 앞으로는 외부에서 신규로 자금을 조달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디폴트 위기도 매우 높은 것으로 보여 적어도 2년 이상 지켜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노상원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높은 위험을 선호하는 성향의 투자자가 아니라면 러시아펀드를 눈여겨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러시아는 늘 변동성이 있는 시장이었지만 최근에는 더욱 심해졌다”며 “만약 국제유가가 현재 저점에 도달했더라도 루블화의 가치하락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여 굳이 투자대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펀드애널리스트도 “국제유가가 다시 반등한다고 해도 러시아의 투자 매력은 떨어진다”며 “달러 강세와 원자재시장의 저가국면으로 오히려 미국이나 중국과 관련된 펀드를 알아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