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구장사거리. 주변에 다른 회사가 많지만 ‘泰勝’(태승)이라고 크게 쓰인 간판이 단연 눈에 띄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잠시 쉬는 시간인지 직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소기업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듣기 위해 찾은 터라 혹시라도 필요한 이야기를 듣지 못할까봐 살짝 걱정됐다. 하지만 차정택 태승 대표이사(55)는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중소기업의 고충에 대해 털어놨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글로벌경쟁력 밀리는 국내 제조업

휴대전화와 PDA 등의 DLC(Data Link Cable) 제조업을 하는 태승은 지난 1996년 문을 열었다. 이후 경기도 안양 임대공장에서 꾸려온 사업을 지난 2004년 현재 구장사거리 인근에 확보한 부지로 옮기면서 덩치를 키웠다.

내비게이션, 블랙박스 등으로 다루는 분야를 확대하면서 연매출 300억원 규모에 80여명의 직원을 채용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태승은 불황을 피부로 느꼈다. 차 대표는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땐 사업을 유지만 해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국내 제조업이 처한 현실에 대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보다 단단한 각오로 무장하고 사업을 시작했던 그였지만 동종업계 중소기업이 하나둘씩 무너지는 상황을 보며 연매출 300억원 규모가 크게 줄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부가가치가 높은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 우위를 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걱정이 태산이다.

“최근 5년 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벌어와 한국에 채우는 식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케이블이나 충전케이블 대량생산은 중국과 베트남에 넘어갔고 우리는 부가가치가 높은 여러 가지 제품을 조금씩 생산하는 수준입니다.”

국내에서의 사업이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물가가 오르고 제품 부가가치가 떨어지면서 생산성이 낮아지자 해외진출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

결과적으로 중국법인은 태승이 풍파를 견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중소기업을 위한 근본적인 지원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태승도 위기에 부딪힐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자리 못 잡는 중소기업의 현실

“많은 중소기업이 해외로 터전을 옮기고 있습니다. 한국의 제조업체가 경쟁력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죠. 중국에 나갔다가 경쟁력에서 밀려 베트남으로 옮기는 회사도 적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이 국내에서 자리 잡기 힘들다는 얘기다. 정부의 지원정책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느 중소기업이든 부가가치가 높고 획기적인 아이템을 개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연구개발비용이 만만찮아 고민이다. 그동안 투자비를 회수하기도 전에 무너진 회사를 많이 봐온 탓이다.

차 대표는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글로벌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부가가치로 짧은 기간에 투자비를 회수해 성장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장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중소기업의 고민이 늘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실패도 있었죠.”

차 대표는 현재 회사규모를 잘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며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안다. 따라서 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올해 의료기기와 말레이시아 고무나무 축출기 등으로 사업분야를 확대할 예정이다. 물론 중소기업이 모두 태승처럼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중소기업은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비 마련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 중소기업 지원 나서야

“자금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죠. 정부가 조금만 더 손을 건네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상황이 더 악화되는 듯합니다.”

중소기업은 기업대출을 받을 때 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이 쉽지 않다. 물론 차 대표는 은행 입장도 이해한다. 행여 대출해준 회사가 무너질 경우 은행이 손실을 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제조업이 성공해야 국가가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여신의 문턱을 낮춰줬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세계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독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조업이 튼튼하게 뒷받침하고 있어서죠. 제조업이 성공해야 국가가 성장합니다. 우리나라도 제조업의 기반을 튼튼히 하려면 정부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제조업은 ‘1+1=2’가 아닌 ‘플러스알파’의 시너지 효과가 있다. 그는 정부가 제조업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국가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제조업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태승은 19년 동안 꾸준히 사업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일부 중소기업이 겪는 고충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예요.”

차 대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품질보증, 창조적 개선의식과 조직문화의 혁신을 통해 회사의 기반을 견고히 했다. 월급쟁이 시절부터 마치 자신의 회사처럼 일해 온 그의 프로의식도 태승의 버팀목이다. 그의 바람은 회사가 영속성을 갖는 것이다. 보다 건실한 태승으로 키워 후세에게 일터를 남겨주는 게 꿈이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은 반드시 확대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