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해 125㎖ 남짓의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셨다. 그러나 그는 이 커피 한잔을 위해 140ℓ의 물이 사용된 사실은 알지 못한다.


물론 A씨가 아메리카노 한잔을 통해 직접 마신 물의 양은 미미하다. 140ℓ라는 물이 들어간다는 말은 그가 마신 아메리카노 한잔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실제로 섭취한 물 이외에도 커피 생산공정과 유통과정을 거쳐 그에게 닿기까지 소비되는 물의 양을 합산한 것이다.

이처럼 제품의 생산·유통·사용·폐기과정에서의 물 소비량을 나타내는 지표를 ‘물발자국'(water footprint)이라고 한다.

[커버스토리] 커피 한잔에 물 140ℓ, 아셨나요

◆물발자국이란?

물발자국이란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의 토니 앨런 교수가 1960년대 처음으로 소개한 ‘가상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가상수는 농산물을 비롯한 재화를 생산함에 있어 실제 완성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소모되는 물의 양을 말하는데 여기에 소비자에 의한 물 소모량과 제품의 폐기단계에서 소모되는 물의 양까지 산정하면 기본적인 물발자국의 개념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물발자국은 어떻게 산정할까.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이 사용한 재화의 물발자국을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소비하는 재화는 수없이 복잡한 생산·유통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표준에 의해 추정해야 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지표는 국제비정부기구인 물발자국네트워크(WFN)가 물발자국의 계산기준과 평가범위 설정, 계산방법 등에 대해 마련한 글로벌 가이드라인인 ‘물발자국 평가 매뉴얼’이다.

WFN은 물 소비의 성격에 따라 청색, 녹색, 회색 물발자국으로 구분해 다각적인 방법으로 물발자국을 산출한다. 우선 녹색 물발자국은 토양표면이나 식물에 일시적으로 머문 물 가운데 인위적인 활동으로 사용된 담수의 양을 의미한다. 농작물이 자라는 데 드는 물의 양과 농림 및 산림분야의 생산활동으로 소비된 물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청색 물발자국은 담수 소비량으로 저장소에서 인위적으로 추출한 담수, 즉 제품의 생산 및 공급망을 따라 소비된 지표수와 지하수를 의미한다. 청색 물발자국은 ▲증발된 물 ▲제품 내에 포함된 물 ▲동일한 저장소로 돌아가지 않는 물 ▲동일한 기간·시점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물 등 4가지 경우가 고려된다.

마지막으로 회색 물발자국은 폐수를 일정기준 오염농도 이하로 정화하기 위해 필요한 담수의 양이다. 이 세가지 물발자국을 합산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재화에 얼마나 많은 물발자국이 찍혔는지 알 수 있다.


이 기준으로 재화의 평균적인 물발자국을 산출해보면 소고기 1kg을 얻기 위해서는 1만5500ℓ, 닭고기 1kg에는 3900ℓ의 물발자국이 발생한다. 옥수수의 경우 1kg당 890ℓ, 토마토는 1kg당 180ℓ가 든다. 공산품도 산출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4용지 1장에는 10ℓ, 1kg의 무게가 나가는 청바지는 대략 1만850ℓ의 물발자국이 찍힌다.

[커버스토리] 커피 한잔에 물 140ℓ, 아셨나요

◆‘보이지 않는 물’에 집중하는 이유

전세계가 물발자국에 집중하는 이유는 물 사용의 국가 간 불균형 현상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지구를 순환하는 물은 그 장소에 있다고 해서 해당 국가의 소유라고 볼 수 없다. 물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머무르고 순환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세계는 이러한 물을 마음대로 소비해왔다.

아프리카대륙의 사람들이 물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물 부족을 겪는 것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의 과다한 물 소비가 원인일 수 있다. 물론 단순히 먹고 씻는 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물’을 포함해서다.

이에 따라 탄소배출권 거래와 같이 ‘물 사용권 거래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국제사회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물이 지구촌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물 사용권을 사야 하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이를 위해 필요한 개념이 바로 물발자국이다. 생산과정에 쓰인 물발자국을 따라가면 국가별로 얼마나 많은 물을 수입하고 수출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물발자국을 토대로 나라별 사용쿼터를 정해 물 수입국이 수출국에 대가를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전세계 물 사용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조만간 현실이 될 전망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와 유엔환경계획(UNEP) 등의 범국가적 기구는 물발자국을 산정하는 방법론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으며 지난해 이와 관련한 국제표준(ISO 14046)을 제정했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20년까지 친환경제품 관련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배터리, IT장비, 식음료(맥주·커피·고기 등) 등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제도가 전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EU로 수출되는 우리 제품에 대한 물발자국 등의 환경정보가 요구될 것이 분명하고 이는 우리 기업에 무역기술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앞으로 예상되는 환경규제의 국제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표준을 제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4월 해외 수출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물발자국 산정방법에 대한 한국산업규격(KS)을 제정했다.

당시 국가기술표준원은 “EU 등 선진국에서 농식품 등 물 소비량이 많은 제품에 대해 물발자국 인증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표준을 미리 마련해놓지 않으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