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으로 출장갔을 때다. 늦은 오후 혼자 호찌민시 중심부에 위치한 조용한 술집을 찾았다. 옆 테이블에 현지인 남녀 3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이 중 한명이 기자 쪽으로 몸을 돌려 말을 붙였다.


“한국에서 왔습니까? 한국은 부유한 국가던데 당신도 부자인가요?”

수치로 따지면 그의 말처럼 한국은 부유한 국가다. ‘2015년 세계경제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번째다.


게다가 외국인에게 직접 들었으니 기자의 어깨가 으쓱할 법도 할 터. 하지만 기자는 마음이 되레 불편했다. 특히 “당신도 부자인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처럼 한국은 정말 부강한 나라일까. 다른 통계수치를 적용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부자와 서민 간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중산층이 사라졌고 가계대출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 1~9월에 늘어난 은행가계대출은 54조9000억원에 달한다. 매달 평균 약 6조1000억원씩 증가한 셈인데 10~12월에도 같은 속도의 증가세가 이어지면 연중 증가액은 73조원을 넘어 지난해 연중 증가액(37조3000억원)의 두배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높은 실업률과 사교육비 증가, 체감물가 상승으로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는 추세다. OECD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34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 행복지수 32위, 국민친절도 2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기업들은 어떤가. 대기업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곳간에 현금을 쌓아놓았는데 중소기업은 내수가 제대로 돌지 않아 자금난에 허덕인다. 하루이틀만에 나타난 현상도 아닌데 정부는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간혹 재계가 정부의 눈치를 보고 강소기업을 육성하겠다며 돈을 풀지만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중소기업에겐 먼 나라 얘기다. 혜택을 본다고 해도 단기간에 그쳐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기자수첩] 여러분, 행복하시나요

“2년 전 서울에 가본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매우 바쁘고 정신없어 보였죠. 한국보다는 베트남이 사람 살기엔 더 좋은 것 같아요.”

기자에게 말을 건 그 현지인은 취기가 올랐는지 결국엔 베트남 예찬론을 펼쳤다. 그리고 기자는 그들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가 베트남보다 잘 사는 나라인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자신하기는 힘들다. 풍요속 빈곤, 대한민국이 처한 진짜 현실이다. 허탈한 건 기자뿐일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