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육두품제 ‘수저계급론', 개천의 용이 사라진다
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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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계급론’ ‘사회계층 이동성’
“신라에서는 사람을 쓰는데도 골품을 따지니 실로 그 혈족이 아니면 큰 재주와 걸출한 공이 있다해도 자기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삼국사기> 제47권 열전 제7 ‘설계두’ 편의 한 대목이다. 신라 육두품 가문 출신의 무인 설계두가 진골출신이 아니면 장군이 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억울하게 생각하여 결국 당나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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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신분은 성골·진골의 왕족, 6·5·4두품의 귀족, 3두품 이하의 평민으로 구분되었다. 이것은 관등, 공복의 색, 집의 크기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사진자료=이미지투데이 |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이 기록은 그저 ‘옛날이야기’만으로 들리진 않는다. 이른바 ‘수저계급론’이 회자되는 가운데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2030세대는 ‘탈조선’을 시도한다. 이들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현세대의 계층적 구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란 말로 조롱한다.
‘수저계급론’이 불편한 이유는 사회계층의 이동성이 낮아진 한국의 현 사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필선 교수(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와 민인식 교수(경희대학교 경제학과)가 지난 2월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의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계층 이동성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지위의 이동성으로 대변되며 소득불평등이 높은 사회일수록 사회이동성이 제약적이다.
부모의 소득이 높은 경우 자녀들에게 더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투자함으로써 자녀의 소득 하락을 방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즉, 부모의 소득이 낮은 경우에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자녀의 소득증가가 어려울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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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소득 수준과 자녀의 수능 성적' 부모의 소득이 낮은 경우에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자녀의 소득증가가 어려울 수 있다. /자료='한국의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최필선·민인식) |
또한 논문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임금이 더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소득 1분위 그룹의 자녀 임금은 162만원인데 비해 소득 5분위에 속한 자녀 임금은 193만원으로 19.1% 높았다. 부모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임금과 임금상승률이 높은 회사에 취업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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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소득 수준과 자녀의 임금' 부모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임금과 임금상승률이 높은 회사에 취업할 가능성이 크다. /자료=‘한국의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최필선·민인식) |
다만 최교수와 민교수는 논문에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정규직 비율이 높아지는 패턴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히려 “소득 1분위 그룹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22%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며, 자녀의 고용안정성(정규직 여부)은 부모의 소득 수준과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최교수와 민교수는 “부모의 교육 및 소득수준이 높은 자녀 표본 중에는 유학준비, 공무원(고시) 시험 준비, 대기업 입사준비 등으로 취업확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회계층의 이동성이 낮아진 배경은 무엇일까.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중산층의 위기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그는 소논문 ‘중산층의 위기’에서 “(오늘날 한국의) 중산층 위기 담론은 중산층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생활수준과 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인식에서 유래했다”며 “자녀 세대가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혹은 중산층보다 상층으로 이동할 가능성보다는 중산층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신교수는 이어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통한 인력 감축이 외환 위기 이후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평균 퇴직 연령이 53세로 낮아졌다”며 “중산층의 위기는 곧 바로 한국 사회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교수는 “많은 교육 투자와 중장년 세대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중산층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힘”이었는데, “성공에 대한 열망과 세대 내와 세대 간 상승 이동에 대한 꿈”이 사라지고 있는 현 실정에 대해 우려했다.
최교수와 민교수 역시 위 논문에서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자녀의 계층이동이 매우 제약적이라면 사회불안의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한 사회 내의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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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자녀의 계층이동이 매우 제약적이라면 사회불안의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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