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한 스크린골프' 하실래요
스크린골프 전성시대 / '골프 대중화' 이끌다
정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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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골프와 IT가 만난 자리에 문화가 탄생했다. 스크린골프장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커피숍처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우리사회에 깊숙이 들어온 스크린골프. 성장가도를 달리게 된 배경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아픔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봤다.
#1 “점심 내기에 이만한 게 없잖아요?” 서울 종로구의 한 스크린골프장. 30대 남성 A씨가 직장동료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가량 짬을 내 끼니도 해결하고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어 일석이조다. 18홀을 다 즐기기 힘들지만 짧게나마 골프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주머니 부담도 덜하다. A씨에게 스크린골프장은 상사의 스트레스와 업무가 주는 피로에서 잠깐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다.
#2 “원두커피로 주세요.” B씨가 익숙한 듯 커피를 주문한다. 연습실에 들어와 신발을 갈아 신는 사이 점원이 직접 만든 커피가 방(스크린골프 연습실)으로 배달된다. 옷을 갈아입고 경기를 위해 인터폰을 누른다. “경주 블루원보문CC, 아마추어용으로 해주세요.” 골프장과 코스를 선택하고 함께하는 인원수, 캐디 여부, 프로·아마추어 등의 옵션도 선택한다. 이제 실전으로…. 샷을 한 후에는 B씨의 스윙 영상이 뒤편에 설치된 카메라에 녹화돼 바로 자신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축하드립니다.” 캐디의 음성과 함께 힘찬 연습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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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골프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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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골프존 |
스크린골프가 우리 사회에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부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골프가 시공간을 잡은 가상의 필드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넥타이부대의 으뜸 여가장소로 손꼽히는 것. 주말은 물론 평일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도 이곳을 찾는 행렬이 끊이지 않으면서 퇴직 후 시니어창업으로 스크린골프를 선택하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스크린골프의 유행은 내 집 마련의 기준도 바꿔놓았다. 입주민 전용 스크린골프장이 있느냐, 없느냐가 프리미엄 아파트의 당락을 결정짓기도 한다. 콧대 높던 골프가 당신의 생활 속에 뿌리내리기까지, 가상 속 푸른 초원의 매력을 분석했다.
◆진짜 이긴 가짜, 주류를 향해
스크린골프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인 지난 1992년, 골프의 이미지는 ‘사치스러운 운동’에 지나지 않았다. 여론조사 갤럽이 지난 1992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골프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는데 90년대에만 해도 우리 국민의 72%가 골프를 사치스러운 운동으로 꼽았다. 그렇지 않다는 의견은 18%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러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치스러운 운동이란 의견은 48%, 사치스럽지 않다는 이들은 47%로 팽팽하게 입장이 갈렸다.
국민스포츠를 향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주류로 꼽히는 축구(18%), 등산(13%), 야구(10%)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골프에 대한 선호도가 한때 붐을 일으킨 요가(3%)에 1%포인트 앞서 4%를 기록했다. 갤럽 관계자는 “지난 2004년과 비교하면 축구가 부동의 1위를 지켰지만 새롭게 좋아하는 운동 10위권에 골프가 포함됐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인식변화에 스크린골프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지난해 기준 스크린골프를 찾는 이용자 수는 연간 4000만명으로 추산된다. 같은 기간 필드나 골프연습장 등을 찾은 이용자 수가 연간 3200만명인 것과 비교하면 스크린골프는 이미 ‘진짜’를 뛰어넘은 셈이다.
스크린골프가 여가스포츠로 급부상한 이유는 간단하다. 필드에 나가서 발생하는 비용과 시간을 아껴줄뿐더러 아웃스포츠가 갖는 날씨나 기후, 풍향 등의 한계를 손쉽게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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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위크DB |
◆시간·비용 효율, 연습용으로 OK
이용료는 필드의 8분의 1 수준이다. 1인당 최소 25만원을 줘야 녹색잔디에 들어설 수 있지만 스크린골프는 3만5000원(18홀 기준) 선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스크린골프 매장이 급격히 늘면서 업체·매장별 서비스 및 가격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요금은 줄고 혜택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골프만의 운동특성도 스크린골프의 성장을 도왔다. 업계 관계자는 “골프는 축구나 배구 등의 다른 구기운동과 달리 이론과 실무를 정확하게 익히지 않으면 실력을 쌓기가 어려운 특성이 있다”며 “비용이 저렴한 스크린골프에서 연습하고 필드로 나가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스크린골프장을 찾는 이들의 다수는 아마추어 골퍼들이다. 스크린골프 이용자의 평균 타수는 94타, 평균 타수가 100타 이상인 이용객의 비율은 전체의 2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2~3명 정도는 100타를 넘기는 초보급 골퍼인 셈이다. 또한 국내 남성 골퍼의 실제 골프장에서의 드라이버 티샷 비거리가 평균 200m 안팎인 반면 스크린골프 골퍼들의 평균 비거리는 186.8m(90~100타)로 집계됐다. 스크린골프 이용객의 20%인 100타 이상 초보골퍼의 평균 비거리는 150.6m로 나타났다.
스크린골프장을 찾은 40대 남성고객은 “필드에 나가면 프로골퍼들이 많아서 운동을 즐기기보단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며 “스크린골프장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연습할 수 있어 자유롭다”고 말했다.
시설과 서비스도 만족도를 높였다. 골프장비와 복장 등이 갖춰져 있고 방 안에는 각종 다과가 준비돼 있다. 매장 한켠에는 마치 카페처럼 커피는 물론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으며 배달음식 주문이 가능해 언제든지 찾아와 식사와 함께 운동을 즐길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 중인 한 사업자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 매장을 찾는 직장인이 평균 3팀 정도 된다. 퇴근 후에도 갈 데 없는 직장인들의 놀이장소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한국인의 놀이문화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회사나 집 주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크고 작은 스크린골프 매장이 들어서면서 주말골퍼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골프에 IT를… 전문코치 대체
하지만 이 역시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이용자들의 외면을 받았을 터. 이 관계자는 “필드와 100% 똑같을 순 없지만 기술의 발달로 진짜와 같은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시공간과 비용의 효율성이 문턱을 낮췄다면 골프에 ‘IT’를 더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는 것이다.
시장점유율 73.59%(8월 기준)로 국내 스크린골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골프존의 창업주 김영찬 회장은 “연습장과 골프장에서 하는 골프가 너무 달라 그 중간에서 필드를 대응할 수 있는 연습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00년 초 벤처 붐이 일던 당시 빠질 수 없던 시대적 키워드는 ‘인터넷’. 김 회장은 여기에 ‘골프’를 더해 현재의 시스템을 일궈냈다.
골프존은 현재 120만명이 넘는 회원이 네트워크 로그인을 통해 본인의 과거 플레이, 연습기록이 저장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온라인상에서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국내 특허권만 161건, 공의 움직임 구현기술과 골프장의 3D가상현실기술로 이용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스마트폰과 접목한 기술로 골퍼들의 호응을 유도한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3D화면으로 분석된 자신의 스윙모습을 볼 수 있어 전문코치의 역할을 대신한다. 단점 파악은 물론 올바른 자세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크린골프장의 최신 프로그램이 현실성(리얼리티) 측면에서 실제 골프장의 95%를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스크린골프가 막 태동했을 당시는 물론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골프시뮬레이션프로그램의 질이 매우 낮아 연습용으로 부족했지만 이후 기술이 발달하면서 필드를 나가기 전 스크린골프를 통한 연습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한국골프학회 관계자는 “스크린골프의 프로그램이 과거보다 비약적으로 진화해 사실에 가까운 장비가 많이 개발되고 있다”며 “많은 골퍼가 스크린골프장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인구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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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문병기 기자 |
◆여성·젊은층·노년층 참여 늘어날 것
스크린골프의 대중화는 이제 막 ‘절반’을 넘어섰다. 아직까지 남성 위주의 문화로 여겨지는 만큼 여성고객의 대중화가 남아 있는 것.
골프존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 7월까지 1년간 스크린골프 플레이를 즐긴 골퍼들의 여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령별로 스크린골프를 가장 많이 즐긴 층은 ‘40대 남성’이며 이용객 10명 중 8명은 남성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84.5%, 여성이 15.5%로 여성비율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4%에서 1.5%포인트 늘었다.
반면 20대의 참여율은 낮았다. 40대 남성이 전체의 37.8%로 가장 많았으며 50대 남성과 30대 남성이 각각 21.5%, 18.9%를 차지했다. 20대 이하의 남성은 2%대에 머물렀으며 여성은 0.6%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여가스포츠로서의 스크린골프는 젊은층, 여성층, 노년층 등으로 참여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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