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나영상씨는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기 위해 은행(카드사) 영업창구 대신 회사 인근에 있는 자동화기기(ATM)로 향했다. ATM에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싶다고 말하자 음성안내서비스가 작동해 발급을 도와준다. 신용카드뿐 아니다. 부동산·세금을 비롯해 대출상담까지 고도의 지식이 필요한 업무도 ATM을 통해 처리할 수 있다. 궁금한 내용을 물으면 음성서비스가 마치 은행 직원과 상담하는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한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신분증은 원격조종으로 은행 직원이 직접 확인한다.


이는 앞으로 달라질 ATM의 모습을 미리 그려본 가상시나리오다. 은행업무를 봐야 하거나 금융과 관련해 궁금한 내용이 있을 때 앞으로는 은행 직원 대신 ATM이 이를 처리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 특히 핀테크 도입으로 ATM의 진화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생체인증 도입하고 환전·티머니 충전까지

ATM이 변화를 꾀했다. 단순한 입출금업무를 전담하던 것에서 환전, 티머니 충전·환불, 외국어 지원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로 고객의 발걸음을 유도한다. 그동안 은행원이 주로 해온 상담과 통장·카드·증명서 발급까지 업무의 폭을 넓혔다. 앞으로는 은행원의 고유업무를 ATM이 대신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ATM의 바로미터는 지난해 12월 첫선을 보인 신한은행의 ‘디지털키오스크’가 꼽힌다. 시중은행이 내놓은 ATM 가운데 가장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지털키오스크는 손바닥 정맥 인증 등 생체인증으로 고객정보를 확인한다. 또 화상 상담으로 신분증만 있으면 카드 없이 출금과 이체가 가능하다. 이체한도 부족이나 보안카드 등을 분실해 이체가 불가한 경우에도 간단한 업무처리 후 이체가 가능토록 했다.


특히 입출금 창구거래량의 90%에 해당하는 107가지의 업무거래가 가능하다는 게 신한은행 측의 설명이다. 입출금계좌 신규, 인터넷뱅킹 신규, 100만원 초과 무통장 송금, 통장 이월기능, 체크카드 신규·재발급, OTP·보안카드 발급, 부채증명원과 같은 증명서발급뿐만 아니라 예·적금 및 펀드 신규가입이 가능하다. 은행원 2~3명의 역할을 ATM기기가 모두 소화하는 셈.


디지털키오스크 바이오인증. /사진제공 신한은행
디지털키오스크 바이오인증. /사진제공 신한은행

이용시간도 탄력적이다. 지역별 수도권 거점 점포의 365일 바로바로코너에 설치되며 운영시간은 기존 자동화기기 시간과 동일하게 오전 7시부터 밤 11시30분이다. 신한은행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24시간 운영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리은행도 ATM 개발에 동참했다. 우리은행은 홍채인증만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홍채인증 자동화기기’를 지난 1월 금융권 최초로 상용화했다. 홍채정보와 이용계좌를 등록하면 현금카드 없이 입출금과 송금, 조회업무가 가능하다.

이용방법도 간편하다. ATM의 메뉴 중 홍채인식을 선택한 후 상단의 렌즈에 눈을 맞추면 사전에 등록한 홍채정보를 인식해 금융거래가 가능하다. 우리은행은 또 지난 3월 홍채인식기술을 보유한 아이리스아이디에 1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KEB하나은행도 지문과 홍채, 안면인식 등 생체인식을 통한 본인 확인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이다. 인터넷뱅킹과 스마트폰뱅킹, 태블릿PC 이용은 물론 대여금고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분야에서 본인 확인시스템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기업은행 역시 이르면 올해 하반기 홍채인식 등 생체인식을 이용한 ATM을 상용화할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말 홍채인증 ATM을 설치하고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수지 IT센터와 본점 영업부에 각각 1대씩 설치한 상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상용화는 올해 하반기로 정했다.


기업은행 홍체인식 ATM. /사진제공=기업은행
기업은행 홍체인식 ATM. /사진제공=기업은행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한 ATM도 눈에 띈다. 기업은행은 KT와 손잡고 지난해 말부터 공중전화와 ATM을 결합한 멀티부스를 선보였다. 부스 내엔 ATM을 비롯해 자동심장충격기, 감시용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했으며 야간조명을 통해 밤에는 가로등 역할도 한다. 고객의 편의를 위해 ATM이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한 것. 이 멀티부스는 전국적으로 1480대 이상 설치된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준비 중인 K뱅크 컨소시엄은 ATM을 활용해 신규고객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본인인증과 대출, 통장개설, 자산관리 등을 ATM으로 진행하겠다는 것. ATM은 공중전화 등 멀티부스와 편의점 ATM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앞으로 단순업무는 ATM을 통해 거래하도록 하고 은행원은 고객 자문이나 관리·기업금융 등 기계가 할 수 없는 특화된 분야에 집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ATM의 변신, 그 이면엔…

은행들이 새로운 ATM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ATM이 애물단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80~90년대만 해도 ATM은 은행의 상징이었다. ATM 앞에 긴 줄을 서서 현금을 찾고 입금하는 풍경이 자연스러웠다. 새로 이사할 때 인근에 은행이나 ATM이 있는지 체크하는 일도 빈번했다.

하지만 비대면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ATM의 인기는 날로 추락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자동화기기는 지난해 말 5만1115대로 전년 말(5만3562대)에 비해 2447대 줄었다. 2년 전인 2013년 말(5만5513대)과 비교하면 4398대가 급감했다. 운용비도 연간 1000만~2000만원가량 소요되는데 여기서 나온 수수료수익은 절반도 채 안된다. 적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폐기하기도 어렵다. 만약 ATM을 폐기했다간 고객의 반발을 살 수 있고 이는 곧 해당 은행의 고객 수가 줄어드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비대면채널이 강화되면서 점차 현금을 비롯해 통장, 카드 이용량이 줄어들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ATM을 단기간에 폐기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많은 고객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적지 않은 수익도 낸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