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개막한 파리모터쇼에 포드를 비롯해 여러 완성차업체가 불참했다. 완성차업체가 이른바 ‘세계 5대모터쇼’에 불참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의 빈자리는 삼성전자와 세아트 등 IT업체가 채웠다. 포드는 이와 반대로 내년 1월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집중한다. 자동차업체와 IT업체의 경계가 사실상 무너졌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달 26일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6 한국전자산업대전(KES 2016)에 다녀왔다.


KES 2016 관람객들이 VR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최윤신 기자
KES 2016 관람객들이 VR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최윤신 기자

◆개발단계부터 협력… ‘관점’ 바꿔야

올해 KES는 기조연설에서부터 ‘자동차’가 주인공이었다. 기조연설은 전시회의 취지와 방향성을 설명하는 자리인 만큼 업계를 이끄는 리더들이 연설을 도맡기 마련이다.


올해 기조연설에는 제임스김 한국지엠 사장을 비롯해 3명의 제너럴모터스(GM) 임직원이 참여했다. 이와 함께 이우종 LG전자 VC(Vehicle Components)사업본부 사장과 제임스 스탠스베리 삼성 전략혁신센터 전무가 등장했다. 5명의 연사 중 4명이 미래의 자동차산업을 이야기한 셈이다.

이날 연설에서 제임스김 사장은 “포스코ICT 및 LG와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전기차에 대한 고객 경험이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의 부족한 점을 IT업계가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우종 사장의 연설도 이와 맞닿아 있었다. 이 사장은 “자동차업계가 ‘바이어-서플라이어’(주문자위탁생산 중심 개발) 협업모델에서 벗어나 전략 수립 단계부터 타업종과 협력해 부품을 개발하는 신개념 프로세스를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획부터 애프터서비스(AS)단계에 이르기까지 산업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

로웰 페독 GM 해외사업 부사장은 GM이 그리는 ‘큰 그림’을 공개했다. 그는 “자동차업계 혹은 IT업계의 다른 어떤 기업도 모바일과 차량의 결합·예측·경험의 측면에서 우리만큼의 역량을 보유하지 못했다”고 자신했다. 이어 그는 “다가오는 스마트카 시대에는 자동차에 대한 정의 자체가 바뀐다”며 “자동차의 판매 대수보다는 저희 제품을 탄 고객의 이동거리를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자율주행과 카셰어링 등으로 자동차의 소유개념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자동차업체의 역할이 단순히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차를 생산해 판매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해당 차량을 이용한 서비스 등에까지 적절한 협력을 통해 진출하겠다는 것이 GM의 ‘큰 그림’인 셈이다.


쉐보레가 국내 최초 공개한 볼트(Bolt)EV. /사진=최윤신 기자
쉐보레가 국내 최초 공개한 볼트(Bolt)EV. /사진=최윤신 기자

◆ 모터쇼 아닌 전자전서 공개된 볼트EV

기조연설을 관람한 뒤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인파가 눈에 들어온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제외하고 가장 돋보인 부스는 한국지엠이 마련한 쉐보레 부스였다. 쉐보레는 이번 KES에서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단일 기업 가운데 세번째로 큰 부스를 마련하고 순수전기차 볼트(Bolt)EV를 국내최초 공개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국지엠 관계자는 “볼트EV의 국내 공개시점을 고민하던 중 시기와 의미를 고려했을 때 한국전자산업대전이 알맞다고 판단했다”며 “혁신을 강조한 자동차답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볼트EV는 최근 미국 환경청으로부터 업계 최고 수준인 1회 충전 주행거리 238마일(383㎞)을 인증받은 순수 전기차로 내년 상반기에 국내출시될 예정이다. 주행거리 연장의 핵심역할을 하는 60kWh급 배터리는 LG화학이 제작한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현재의 상황에서 주행거리를 이만큼 늘렸다는 것은 그자체로 혁신”이라고 말했다.

현재 양산되는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100~150km에 불과한 실정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주행거리에 대한 걱정 없이 전기차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가 유일한 상황인데 볼트EV는 단한번의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어 본토에서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3만달러(한화 약 3300만원)대의 가격에 주행거리가 300km를 넘는 전기차를 ‘2세대 전기차’라고 규정했다. 이정도의 경쟁력을 갖춰야 내연기관차와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판단인데 그 서막을 알리는 모델이 볼트EV인 셈이다.


LG이노텍 전시장에 자동차 부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최윤신 기자
LG이노텍 전시장에 자동차 부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최윤신 기자

◆ 부품업체도 대거 참여… 중국업체와 협력도

자동차부품업체도 대거 참여했다. 산업부를 중심으로 지난해 말 출범한 ‘자동차융합 얼라이언스’는 코엑스 B관에 150여개 소속 업체들과 함께 공동관을 구성했다. 공동관에서는 캠시스의 소형 전기트럭을 비롯해 현대모비스, 에스엘, 엠씨넥스 등 자동차부품기업의 자율주행시스템, 카메라 인식센서 등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의 융합기술을 선보였다.

이 부스에서는 코니자동차를 인수한 카메라 모듈사 캠시스가 184km 주행이 가능한 전기 픽업트럭 ‘킹캡’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특히 캠시스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제어장치(VCU), 인버터 등에 고유기술을 적용해 비용을 낮출 예정이다. 캠시스는 지난 4월 중국 대부배천그룹과 합자법인을 설립해 오는 2018년까지 전기차를 양산한다는 목표로 생산기지를 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업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갑을관계의 하청구조에서는 혁신을 거두기 어렵다”면서 “캠시스의 사례처럼 동등한 관계의 협력구조가 기반이 돼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