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계약금 실제 수령 가능성 거의 없어

한미약품 사태를 계기로 신약 기술수출 계약의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해 초 10만원도 채 안됐던 한미약품 주가가 11개월 뒤 86만원을 넘어선 것은 온전히 7조원대에 달하는 5건의 신약 기술수출 계약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한미약품이 받은 금액은 10분의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단계별 마일스톤에 따라 지급받기로 했지만 아직 상품화에 성공한 신약은 없다. 특히 지난 9월 말에는 베링거인겔하임과의 8300억원 규모 계약이 깨지기도 했다. 증권가에서 부랴부랴 목표주가를 대폭 낮췄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약품 본사. /사진=뉴스1 DB
한미약품 본사. /사진=뉴스1 DB

◆성공 신화 릴레이 이면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0일 공개한 2015년 1월~2016년 9월 ‘제약기업 기술수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국내 제약사는 글로벌 제약사와 33건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규모가 공개된 것은 24건으로 규모는 78억달러(약 8조9000억원)에 이른다. 해당 자료에 누락된 한미약품의 표적항암제 제넨텍 기술이전 계약(계약금 8000만달러, 마일스톤 8억3000만달러)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는 더 크다.

최근 악재 늑장공시, 미공개 정보유출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미약품은 이 기간 ▲일라이릴리 6억9000만달러 ▲사노피 39억유로 ▲얀센 9억1500만달러 ▲자이랩 9200만달러 등과 약 6조7945억원(베링거인겔하임 계약 제외)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해 국내 제약업계의 신약 기술수출을 이끌었다. 


한미약품 외에도 ▲보령제약(쥴릭파마, 1억2900만달러) ▲진원생명과학(매드이윤, 7억3000만달러) ▲제넥신(타슬리, 1억달러) ▲크리스탈지노믹스(앱토즈 바이오사이언스, 3억300만달러) ▲일양약품(알팜, 2억달러) 등도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28일 베링거인겔하임과 내성표적항암신약 ‘올무티닙’ 기술수출과 관련해 총 계약규모 7억3000만달러(약 8300억원)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가 지난 9월30일 계약이 해지됐다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한미약품이 받은 실제 금액은 계약금 5000만달러(약 570억원)에 마일스톤 1500만달러(약 171억원)를 더한 6500만달러(약 742억원)에 불과하다. 당초 밝힌 총계약금의 10분의1도 못 받은 것이다.

이 사실이 뒤늦게 발표되며 한미약품 주가는 며칠 만에 60만원대에서 40만원대 초반으로 급락했다. 계약 해지만 문제가 아니라 늑장공시, 미공개 정보유출 의혹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지만 앞으로 또 다른 계약 해지 건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바이오협회가 발표한 ‘2006~2015년 임상단계별 성공률’ 자료에 따르면 임상 1상부터 최종 상품화까지 성공할 확률은 9.6%에 불과하다. 임상 1상 성공률은 63.2%, 임상 2상 성공률은 30.7%, 임상 3상 성공률은 58.1%인데 한미약품이 기술을 수출한 신약 후보물질은 대부분 임상 1~2상에 머물러 있다.

특히 연구개발 경험과 비용 등을 감안하면 미국보다 국내 제약사의 신약 성공률은 더 낮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평가다.

기술 이전을 받는 글로벌 제약사도 이 점을 알기 때문에 소정의 계약금만 지불하고 전체 계약금의 90% 이상은 마일스톤 방식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선호한다. 마일스톤은 임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상품화까지 가는 과정에서 단계별로 돈을 지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결국 마일스톤이 포함된 총계약금은 ‘최종 개발에 성공해 상품화가 된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개발 도중 심각한 부작용 등 문제점이 드러나거나 경쟁업체에서 먼저 관련 신약을 개발해 상품화까지 이어지지 못하면 마일스톤은 사라지는 돈이 된다.

한미약품 계약 해지에 앞서 동화약품(골다공증치료제), LG생명과학(간질환치료제), 부광약품(B형간염치료제), 종근당(비만치료제) 등도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가 심각한 부작용 등이 나타나 개발이 중단된 바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 성공률을 감안하면 총계약금을 모두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고 말했다.  


지난 9월20일 서울 영등포구 미래에셋대우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바이오 코퍼레이트 데이'에서 참석자들이 유진산 팜앱신 대표의 신약 개발 관련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1 DB
지난 9월20일 서울 영등포구 미래에셋대우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바이오 코퍼레이트 데이'에서 참석자들이 유진산 팜앱신 대표의 신약 개발 관련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1 DB

◆성공보다 훨씬 높은 실패 확률

그러나 한미약품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제약업계, 증권가, 언론 등은 마일스톤이 포함된 계약의 위험성은 간과한 채 총계약 규모에만 집중해 성과를 포장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총계약에 도취돼 투자자에게 모든 계약금을 다 받게 될 것이라는 착각을 심어준 것. 

해외에선 임상 중단 또는 실패를 신약 개발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생각한다. 반면 국내에선 신약 개발 경험 자체가 드문 탓에 개발 중단이나 실패가 곧 회사의 실패로 받아들여지며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한미약품 사태 후 현대증권(122만원→71만원), 유진투자증권(109만원→74만원), 동부증권(93만원→73만원) 등 증권가에서 목표주가를 일제히 낮춘 것은 주가 거품과 회사의 실패를 어느 정도 감안한 조치로 분석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계약 해지로 이슈가 된 올무티닙은 30여개의 파이프라인 중 1개에 불과하다”며 “회사의 연구개발(R&D) 능력과 개발 중인 다수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잘 살펴보면 성장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은 게 현실이다.

특히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신약후보물질이 ‘마의 벽’이라 불리는 임상 2상 이전에 집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권가에서 한미약품 사태 후 조정한 주가가 적정한지도 의문이다.

다국적 제약사 한 관계자는 “한미약품 사태로 국내에서 신약 기술수출 계약의 허점이 드러났다”며 “계약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마일스톤에 해당하는 금액은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약 20조원 정도로 글로벌시장의 2%도 채 안된다”며 “국내 제약사가 신약 개발을 통해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은 경험이 짧은 만큼 제대로 평가받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