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는 ‘커넥티드 카’ 사업의 추진동력을 얻었다. 지난 14일 삼성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이사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고 미국 ‘하만’ 인수를 의결했다. 인수가는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인수는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에 선임된 이후 이뤄진 첫 M&A(인수합병)로 삼성의 미래 전략을 가늠케 한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스1 DB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스1 DB

◆9조3000억원 아깝지 않은 하만

하만은 세계 최대의 오디오·전장(차량용 전자부품) 전문기업이다. 인포테인먼트(차량용 내비게이션·오디오·비디오시스템)와 텔레매틱스(통신장비), 보안, OTA(Over The Air·무선통신을 이용한 SW 업그레이드) 솔루션업체로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시장점유율 1위(24%), 인포테인먼트 전체 2위(10%), 텔레매틱스 2위(10%)를 차지한다.

하만의 매출 중 65%가 전장분야에서 발생한다. 특히 커넥티드 카(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과 연결된 미래자동차), 카오디오사업은 연 매출의 약 6배에 달하는 240억달러(약 28조2500억원) 규모의 수주잔액을 보유했다. 이는 자동차 생산에 앞서 하만에 커넥티드 카와 카오디오 시스템을 주문한다는 의미다. 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브랜드뿐 아니라 람보르기니, 페라리, 롤스로이스 등 럭셔리브랜드까지 하만의 제품을 탑재하고 있다.


하만은 현재 미국과 멕시코, 독일 등 세계 10개국에 19개 제조 거점을 갖고 있으며 이 중 전장사업은 9개다. 특히 JBL, 하만카돈, 마크레빈슨, AKG, 뱅앤올룹슨, 렉시콘 등 프리미엄 오디오브랜드를 보유했으며, 카오디오시장에서 하만의 점유율은 41%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현대차의 프리미엄브랜드 제네시스의 최상위 차종인 EQ900에 렉시콘 사운드시스템이 탑재됐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하만의 가치는 9조3000억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삼성의 하만 인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해외 IT매체들은 지난 2014년 애플이 오디오브랜드 비츠(Beats)를 30억달러(약 3조원)에 인수한 것과 유사한 시도로 보도했으며 일부 독자들은 "비츠보다 명성 높은 오디오브랜드를 잔뜩 가진 하만을 불과 80억달러에 인수함으로써 애플에 한 방 먹였다"고 평가했다.

◆전장사업 날개 단 삼성, ‘생태계’ 구축하나


이번 인수로 삼성전자는 전장사업에 날개를 달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권오현 삼성전자 부사장을 중심으로 전장사업부를 꾸렸지만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으며 뚜렷한 수주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LG전자가 10여년 전 전장사업을 시작한 것에 비해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그러나 하만을 품으면서 인포테인먼트 분야를 선점하고 수많은 자동차 거래선을 확보했다.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단숨에 커넥티드 카시장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공격적인 M&A로 미래 사업의 ‘퍼즐조각’을 맞추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기업 조이언트와 캐나다 디지털광고기술 스타트업 애드기어를 인수한 데 이어 7월에는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가 된 중국 BYD의 지분을 샀다.


이어 8월에는 미국의 고급가전기업 데이코를 사들였고 10월에는 미국의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업체 비브 랩스를 인수했다. 또 지난 14일에는 하만을 전격 매입했고, 16일에는 차세대 문자메시지 서비스(RCS) 기술을 보유한 정보기술(IT)업체 뉴넷캐나다를 인수했다. 이밖에도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미국의 사물인터넷 IoT 플랫폼 개발업체 스마트싱스, 미국 모바일 결제전문기업 루프페이 등을 사들였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행보로 이 부회장의 ‘뉴삼성’이 가시화됐다. 미래 먹거리 확보에도 ‘실용주의’ 원칙을 적용해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만들어진 업체의 기술을 사들여 선택과 집중을 가속화한 것.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시간’을 샀다고 평가한다.


삼성전자는 하만의 기술과 자사의 OLED, AI, 음성인식, 모바일 등 노하우를 결합할 방침이다. TV와 스마트폰은 물론 VR, 웨어러블기기 등 각종 제품에 하만의 음향기술과 브랜드를 적용해 ‘삼성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와 하만의 극장용 음향시스템사업 간 융합도 이뤄질 전망이다.

김동원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만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및 IoT, 대중화된 다수의 고급브랜드, 글로벌 유통망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삼성의 차량용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접목하면 앞으로 보쉬, 컨티넨탈 등과 경쟁할 때 우위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10여년 앞섰지만 전세역전된 LG전자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경쟁사인 LG전자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 것으로 분석된다. LG전자는 2000년대 후반부터 친환경 자동차부품사업에 힘을 쏟았다. 이어 2013년 VC(자동차부품)사업본부를 꾸린 후 기술개발에 주력, 전장사업부문에서 삼성전자를 앞서는 듯했으나 이번 인수로 전세가 역전됐다.

더욱이 LG전자가 하만의 음향브랜드인 하만카돈과 TV용 음향기술을 협업 중이어서 전장사업에서는 경쟁을, 가전사업에서는 협력을 하게 됐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적과의 동침’ 상태가 된 것. LG전자 측은 “단기간은 타격이 없을 것”이라며 “타사의 사업부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LG전자 스마트폰과 하만의 뱅앤올룹슨브랜드 간 협업에 대해서는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LG전자는 뱅앤올룹슨의 스마트폰 부문과 협업한 반면 하만은 뱅앤올룹슨의 카오디오 부문을 보유하고 있어 양사의 계약 이후에도 타격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진입 타이밍을 놓쳤던 삼성이 글로벌시장에 쇼크를 줬다”며 “LG전자의 경우 중첩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고민되겠지만 결국 다 연결된 시장이다. 스마트폰, 가전제품, 타이젠 운영체제(OS) 등과의 시너지가 앞으로의 숙제”라고 평가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