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경제가 폭풍전야에 휩싸였다. 미국이 내년부터 자국 보호주의 강화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돼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와 신흥국가의 불확실성 리스크가 커져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에 대한 대응전략이 전무한 상태다. 트럼프 진영에 친한파가 없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앞으로 정책을 어떻게 펼칠지 예측하기 힘들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은 ‘최순실 게이트’ 사태까지 겹쳐 사실상 국정운영이 마비된 상태다. 당장에라도 정부 차원에서 트럼프 진영과 교류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국정 시계추가 멈추면서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예측성 리스크’와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불확실성 늪’이 한국경제를 점점 궁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노믹스-상] 불확실성 늪에 빠지다

◆미국 수출규모 줄 수도… 통상정책 초비상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통상정책이다. ‘통상’은 서로 물품을 사고파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와 다른 국가 간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 즉, 수출입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선 미국과의 교류가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효과가 컸다.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국과의 교역에서 우리나라는 258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는데 한미 FTA 협정 실행 직전인 2011년 흑자규모는 116억달러에 불과했다. 한미 FTA 이후 수출물량이 두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에서 한미 FTA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워 불안한 기류가 감지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의 일자리가 줄고 기업의 손해가 크다며 한미 FTA 폐기를 주장했다. 만약 이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나라의 통상분야엔 험난한 파고가 예상된다.

관세장벽도 불확실성 리스크로 꼽힌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과 멕시코산 자동차에 각각 45%, 35%의 관세를 매기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우리나라는 한미 FTA 체결로 ‘관세 폭탄’ 영향에서 벗어났지만 중국과 멕시코산 자동차에 관세를 적용하면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세를 적용받으면 중국이나 멕시코가 해외기업 수입을 줄일 가능성이 높아 우리나라 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수출대상국이며 멕시코는 삼성과 기아차 등 국내 대기업이 대거 진출한 국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에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 한국은 경쟁자가 줄어 이득을 볼 수 있지만 FTA가 결코 한국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애널리스트들도 한 목소리로 “미국이 관세정책을 고집하면 미국 수출시장을 위축시키고 한국과 일본 등 중국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가 빠지고 환율 휘청… 불안한 금융시장

금융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우선 주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 당선 직후인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우리나라 코스피지수는 2000선 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지난 15일엔 1960선까지 추락했다. 이는 미국의 연말 금리 인상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가능성에 ‘달러투자’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코스피지수가 1900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점쳤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같은 기간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주식자금 중심으로 하루 평균 유출규모가 10억달러에 달했다.

환율의 움직임도 불안하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3.1%나 상승해 1170원대로 올라섰다. 신흥국의 증시가 빠지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의 금융시장은 당분간 불안한 현상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우리가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태”라며 “금융시장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재정정책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이 국채발행을 늘리는 등 재정정책을 확대하면 물가상승압력이 높아진다. 이 경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와 무관하게 채권금리가 올라 시장금리가 상승압력을 받을 수 있다. 또 우리나라의 통화정책도 미국과 공조를 맞춰야 하는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윤여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앞으로 미국은 국채발행 등 빚으로 살림을 꾸리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커졌다”며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건설업계 ‘방긋’… 기준금리 도움될 수도

물론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프라투자 확대다. 트럼프 당선인은 임기 내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투자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도로와 다리 등 낙후된 공공인프라에 5년간 50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 주도로 투자를 늘린다는 게 트럼프 진영의 생각이다. 이 경우 우리나라는 미국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에 호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도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준금리 상승은 미국경제가 살아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금리상승에 따른 타격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 기준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11월 한국 기준금리는 연 1.25%, 미국 기준금리는 연 0.375%다. 미국이 연말부터 내년 말까지 두세차례 금리를 올리더라도 연 1%대 미만 수준이기 때문에 해외투자자 이탈현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장보형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노믹스를 너무 부정적인 견해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며 “한국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주요 신흥국가와 공조해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래의 시나리오를 긍정적인 잣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