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다. 특히 지난 11월14일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을 80억달러(약 9조2000억원)에 인수하면서 이 분야에 큰 파장이 일었다. 자동차 전장사업의 변방업체였던 삼성전자가 핵심부품사인 티어1 업체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상황을 지켜보면 꽤나 흥미롭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든 IT업체든 업종에 관계없이 서로 손잡고 ‘커넥티드 카’ 관련기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금 행보로는 각자 살길을 찾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플랫폼이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의 패권을 쥐기 위한 생존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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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눈독 들인 IT업계

IT업계가 자동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자동차의 전장화 흐름 때문이다. 자동차회사는 환경규제 강화로 ‘경량화’ 숙제를 떠안았고 차체나 부품의 소재를 바꾸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은 점점 자동차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여기서 또다시 완성차업체의 고민이 시작된다. 차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며 스마트폰 연결을 비롯한 다양한 기능이 요구됐고 첨단 인포테인먼트시스템이 필수로 자리했다.

최근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선 무게만 수십kg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사 1개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많은 돈을 쏟았지만 정작 전선 무게가 늘어 의미가 퇴색됐다.


완성차업계와 IT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도출한 결론은 ‘플랫폼’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합함으로써 불필요한 선을 정리할 수 있고 무선이나 디지털방식 통합케이블로 대체해 기능을 문제없이 구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을 다시 만들다보니 설계 단계부터 서로의 기술력 경쟁이 치열하다.

한 글로벌 부품업체의 고위임원은 “자동차를 구성하는 플랫폼과 내부 네트워크의 플랫폼을 통일하는 건 원가절감과 경량화 등 큰 장점이 있다”면서 “하지만 그만큼 제품의 개성이 줄어들기에 결국 전장화는 특색 있는 UI(User Interface) 구성으로 소비자의 감성적 요구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IT업계가 자동차에 관심을 가진 또다른 배경은 전기차다. IT업계는 전기차가 여러 전기적인 부품이 어우러지는 만큼 IT업계가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완성차업계는 자동차의 최우선과제는 안전이라는 점을 들며 차를 만드는 게 쉬운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공격하는 IT업계와 막으려는 자동차업계의 치열한 신경전이다.

◆삼성전자 vs 현대차 승자는?


하만은 자동차전장업체 중에서도 특별한 기업이다. 고급차에 필수적인 프리미엄 오디오브랜드 대부분을 보유했다. 그러다 보니 완성차업계와의 관계도 일반적인 부품사들과는 다르다. 완성차업계 입장에서 하만은 꼭 필요하지만 제어가 어려운 골치아픈 파트너다.


실제로 하만, 보스(Bose) 등 글로벌 전장업체는 고객사(완성차업체)의 요구에 맞추기도 하지만 최적의 성능을 내기 위해 설계를 제안하기도 한다.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고 고집이 세서 완성차업체가 다루기(?) 까다롭다고 정평이 났다.

그런 하만을 IT업체로 분류되는 삼성전자가 전격 인수했다. 완성차업계에 더 어려운 문제가 출제된 셈이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단순히 커넥티드 카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플랫폼 제작의 일환으로 점쳐진다. 이미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이후 전장사업분야 토털솔루션기업임을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을 중심으로 전장사업을 준비해왔고 모바일기기와 관련 통신기술에도 강점을 보였다. 이번 인수로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보안, OTA(무선통신을 이용한 SW업그레이드)기술과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만 인수 발표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하만이 보유한 전장사업 노하우와 방대한 고객 네트워크에 삼성의 IT와 모바일 기술, 부품사업 역량을 결합해 커넥티드 카 분야의 새로운 플랫폼을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애플과 구글은 이미 전장플랫폼사업에 뛰어들었다. 애플의 카플레이, 구글의 안드로이드오토는 각사의 모바일 OS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과 연결성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아직까지는 스마트폰과 연동해 여러 기능을 구현하는 차원이지만 자동차 운영체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애플이 타이탄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플랫폼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분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다.

완성차업계도 발빠르게 대응 중이다. 여러 자동차제조사는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손잡고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거나 IT하드웨어업체와 제휴해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서도 움직임이 분주하다. 통신장비회사 에릭슨과 협업 중인 BMW는 최근 SK텔레콤과 ‘5G’ 커넥티드 카서비스를 시연했다. 현대기아차는 연초부터 글로벌 네트워크장비회사 시스코(Cisco)와 손잡고 세계 최고수준의 커넥티드 카를 만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리눅스 기반 제니비(GENIVI) 등 오픈소스를 활용해 운영체제(OS)를 직접 개발한다. 이를 위해 지난 10월 전담팀을 신설했고, 상용화의 기준이 되는 레퍼런스 플랫폼 개발을 위해 국내외 다양한 기업과 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미래 커넥티드 카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축에 힘쓰는 중”이라며 “연결성을 강화해 자동차 효율을 높이고 사고율을 낮추는 게 최종 목표”라고 전했다.

◆무한경쟁 속 동맹 늘어날까

자동차 전장플랫폼의 경쟁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점점 뜨거워지는 상황이다. 관련업계의 몸부림 속에 플랫폼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아직은 절대강자나 절대약자가 없는 상태다. 상황에 따라 누구든 패권을 쥘 가능성이 열려있다.

전장업체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업체들이 여러 기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서 “경제상황 등에 따라 업체 간 플랫폼 제휴를 통한 동맹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절대강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업체들이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서로 필요한 부분을 공유하거나 조금씩 양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