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반기문의 10년, '극과 극' 평가
서명훈 특파원의 New York Report
뉴욕(미국)=서명훈 머니투데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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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마침내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은 없었지만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의도된 계산이었는지 아니면 예상보다 빨리 속내를 내보이게 된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반 총장은 2016년 12월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실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마지막 공식 일정이자 언론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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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진=뉴시스 전진환 기자 |
이날 인터뷰는 반 총장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됐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질문은 ‘차기 대권 주자 반기문’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유엔에 왔고 사무총장 10년을 마감하니까 유엔에 관해 질문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국내 정치 문제를 물으니 당혹스럽다”고 했다.
당혹스럽다고 했지만 반 총장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아니었고 다만 답변 순서가 조금 앞으로 당겨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답변 역시 한국에 돌아가 정치·사회 지도자들, 국민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모범답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 총장의 본심을 캐기 위한 기자들의 질문은 더 집요해졌다. 반 총장 역시 배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최근 뉴욕 외교협회에서 “국가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배신당해 매우 분노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적극 밀어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 참배를 미룬 것이나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추켜세우다 비판으로 돌아선 것도 배신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반 총장은 “평생 배신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고 인격 모독으로 생각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당황한 반 총장은 ‘국민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국민이 원하면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숨겨왔던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그는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한 몸 불살라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반 총장의 지난 10년간 업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역대 최악’이라는 비판이 있는 반면 누구보다 성실했고 최대 난제였던 기후변화협약을 이끌어냈다는 찬사도 적지 않다. 대권 후보 반기문에 대한 평가 역시 극과 극이다. 그만큼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실함·폭넓은 인맥·중립적 '강점'
반 총장을 잘 아는 인사들은 그의 ‘성실함’에 혀를 내두른다. 대표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으로 보낸 그의 10년을 한번 돌아보자.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공식·비공식 면담과 연설, 인터뷰 등 총 3만4564회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3650일 동안 하루 평균 9.5개의 일정을 소화했다는 얘기다.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154개 회원국을 직접 방문했다. 방문하지 못한 나라는 접근이 어려운 작은 섬나라나 오지, 북한이 유일하다. 이동거리만 약 480만Km로 지구를 100바퀴 넘게 돌았고 달을 6번 왕복한 셈이다.
세계 정상들은 물론 지도자들과 다져 놓은 폭넓은 인맥은 반 총장의 최대 무기다. 그는 국가원수 등 정부 인사와 국제기구 수장을 7271회 만났다. 학계와 재계, 비영리단체 인사와 만난 횟수도 870차례에 이른다.
'세일즈 외교'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세계 지도자들과의 폭넓은 인맥은 큰 자산이다.
외교 역시 넓은 범위에서 정치의 한 영역인 만큼 그에게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국내 정치 경험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만큼 계파로 얽힌 한국 정치 지형에서 중립적인 인물이다. 정치 세력간 반목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한국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셈이다.
반 총장이 최근 연설에서 ‘포용의 리더십’과 ‘사회 통합’을 화두로 제시한 것은 자신의 이 같은 장점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날 간담회에서 “화합과 통합, 포용적 대화가 진정한 리더십의 요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돌파력·시대정신 의문… 국제사회 비난도 걸림돌
반면 반 총장은 대권 후보로서 약점도 적지 않다. 국내 정치 경험이 없어 중립적인 측면은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정치 기반이 약하다는 것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각종 난관 해결에 필요한 우군이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정책 상당수가 국회 입법을 통해 실행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우려되는 대목이다.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절에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슈에 대해서는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는 기후변화협약의 경우 공감대가 상당 부분 형성돼 있었고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이 큰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리아 난민이나 북핵 문제도 돌파력에 의문을 갖게 하는 사례다. 반 총장 역시 두가지 국제사회 이슈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후회와 아쉬움을 토로했다.
반 총장이 화두로 제시한 ‘포용’이 시대정신에 맞는 것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촛불에서 나타난 민심은 포용보다는 단죄나 과거 청산에 가깝다. 한국 사회가 진정한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일제시대 잔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돈과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은 과거 탓이 크다.
그가 내세운 포용과 화합이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인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정치 기반이 약하고 대선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대선 승리를 위해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성격이 너무 다른 세력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유엔 사무총장 직후 대선에 출마하는 데 대한 국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도 부담이다. 강제성은 없지만 1946년 제1차 유엔총회 결의안에는 “사무총장이 보유한 기밀정보가 다른 회원국에게 불쾌함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정부 직도 제안하지 않고 사무총장 자신도 그런 직을 수락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돼 있다.
규정에 대한 해석은 다소 엇갈린다. 대통령은 임명직 공무원이 아닌 선출직이라는 점과 과거 사무총장 가운데도 퇴임 후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에 오른 사례가 있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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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무총장 퇴임 후 대권 도전까지 걸린 시간이 가장 짧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가 느낄 당혹감은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오히려 유엔 사무총장 경력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를 지우기 힘든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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