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소비절벽] 각자도생, '협동조합'으로 풀자
인터뷰 -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장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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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지갑을 닫는 소비자가 늘었다. 여기에 생산가능인구 감소,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등 부정적 경제 전망이 소비위축을 더욱 부추긴다. 소비 감소는 생산 감축으로 이어진다. 생산이 줄면 소득이 감소해 자연스레 소비도 위축된다. 소비가 급격히 줄어드는 ‘소비절벽’이 우리나라 경제 전체를 경직시키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머니S>는 소비절벽시대를 긴급 진단했다. 서울 주요 상권 및 유통가의 분위기를 살피고 새로운 소비트렌드를 분석했다. 정부와 기업의 소비절벽 극복 대책과 전문가로부터 해법도 들었다.<편집자주>
소비절벽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삶이 변했다. 제한된 예산으로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소비나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조된다. 새해 소비트렌드 키워드로 꼽힌 ‘욜로라이프’, ‘1코노미’, ‘B+ 프리미엄’ 등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이 흐름은 인구구조의 변화로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소비가 개인적 영역에만 국한되면서 공동체적 가치를 잃어가는 것. 소비절벽이 인간관계의 파편화를 조장하는 셈이다.
<트렌드코리아 2017>의 공동저자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를 만나 소비절벽시대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들어봤다.
◆미래 불안이 ‘소비절벽’ 부른다
“소비절벽은 인구구조적인 문제가 큽니다. 2018년이 되면 인구절벽이 온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인구가 줄면 전체 사회의 구매력이 감소하고 산업과 고용이 위축됩니다. 결국 소득과 개인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이 교수는 소비절벽의 원인으로 인구 감소와 함께 사회안전망의 부재를 지목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와 1인가구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홀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선진국과 다르게 노년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민의 불안감은 더 커진다.
“이미 소비절벽을 겪은 일본을 우리나라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처럼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돼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소비도 줄어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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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사진=임한별 기자 |
소비절벽의 불안감은 소비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 교수는 현재 소비트렌드의 핵심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정의했다. 물론 예전부터 가성비는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지만 최근 가성비를 따지는 품목이 더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자신이 선호하는 물건은 가격을 낮추기보다 성능을 올리는 게 특징이다. 소비절벽시대임에도 프리미엄시장이 점차 커지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과거에는 고관여 제품, 즉 가전이나 전자제품 등을 구매할 때 가성비를 고려했다면 지금은 저관여 상품이나 대중품으로도 확산됐습니다. 가령 사람들은 이제 마트에서 세제를 살 때 g당 1원이라도 싼 제품을 찾습니다. 반면 자신이 좋아하는 어묵을 살 때는 1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합니다. 또 정보력이 좋아지면서 브랜드 중심의 구매가 줄고 성능과 스펙으로 소비를 판단하죠. 중국산 샤오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가성비 추구의 확산은 이 교수가 제시한 2017년 소비트렌드 키워드인 ‘각자도생’과 맞물린다. 각자도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추세를 일컫는다.
“사실 각자도생은 몇년 전부터 관심받은 진부한 트렌드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피크에 도달하지 못하고 점차 전세계적 메가트렌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나홀로족의 혼술, 혼밥이 유행하는 것도 각자도생의 일환이죠. 또 1인 미디어와 O2O시장도 개인에 특화된 모바일을 기반으로 성장한다는 측면에서 이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작은 연대’로 소비절벽 극복
각자도생이 메가트렌드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이 교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는 젊은 세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혼밥하는 사진을 올리는 것이 각자도생의 삶을 살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집단 속에서 살아가려는 인간의 본능이 작용한 것이다. 다만 그는 소비절벽이 피상적이고 얇은 인간관계를 부추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각자도생은 공멸의 길입니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죠.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작은 연대의 회복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두레, 품앗이 등 공동체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살리지 못하는 측면이 있죠.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가 주장한 작은 연대의 사례는 생활협동조합이다. 국내에서는 친환경 유기농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한살림이나 아이쿱생협 등이 대표적이다. 협동조합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조합원으로서 사업체를 운영해 윤리적 소비와 생산이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체는 99% 이상이 주식회사지만 유럽은 20~30%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협동조합 형태의 회사가 많은 거죠. 협동조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주로 마을 살리기, 지역경제 살리기 등의 의미를 갖고 태어납니다. 협동조합의 발전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겁니다. 특히 협동조합의 이익은 재벌기업처럼 누군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에게 배분되고 나머지는 공동체의 복지나 공익적 측면을 위해 쓰이기 때문에 좋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에 협동조합시스템이 정착하고 소비절벽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신뢰구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자생적으로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경제시스템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본은 신뢰자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과 같은 선진국은 전형적인 고신뢰사회인 반면 우리나라나 중국은 저신뢰사회로 구분됩니다. 기득권층이 부를 독점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공정성이 의심받는 겁니다. 이번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신뢰도 높은 사회로 업그레이드돼야 합니다. 이를 위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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