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은 은행의 생사가 걸린 필수과제다.”

연초 시중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주요 경영전략으로 해외진출을 꼽았다. 은행이 수익을 내기 위해선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금융시장을 벗어나 해외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해 은행권의 해외진출 전략에서 달라진 점은 해외점포 1번지로 통하던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논란에 휩싸여 한계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다수의 중국법인이 중국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규제에 시달려 실적이 떨어졌고 ‘탈중국’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고전한 시중은행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동남아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서 글로벌 생산기지를 옮겨 기업과 교민들의 금융수요가 늘어난 데다 점진적인 경제성장으로 여신금융 확대에 따른 수익상승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머니S토리] 은행권 해외진출 달라졌다

◆신한 ‘텃밭’에 KB·우리도 진출

동남아 국가 중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3개국이 해외진출의 요충지로 떠오른다. 특히 ‘포스트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은 많은 인구와 낮은 평균연령, 높은 휴대폰 보급률, 낮은 계좌보유율, 우리나라에 대한 높은 호감 등으로 국내점포가 영업하기에 매력적인 국가로 꼽힌다.


더욱이 올해는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25주년을 맞아 베트남 금융당국도 우리나라 은행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해외점포를 설립하기 좋은 타이밍으로 판단된다.

국내 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이 베트남에서 독주하고 있다. 베트남금융시장에서 외국계 은행 순익 1위를 차지하며 HSBC마저 앞지른 상태다. 지난해 신한베트남은행은 영업망을 18곳까지 늘려 오프라인 영업기반을 갖췄고 56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오프라인 점포를 기반으로 모바일전문은행 써니뱅크 출시, 자동차대출상품 취급, 베트남 핀테크사업 지원 등 현지밀착형 영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국내에서 신한은행과 선두권 경쟁을 벌이는 KB국민은행도 베트남시장에 발을 디뎠다. 국내에서 가장 점포가 많은 KB국민은행은 그동안 해외실적이 저조했으나 윤종규 은행장이 지난 2월 초 직접 응우엔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나 베트남사무소의 지점 전환을 논의하는 등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베트남 영업을 비롯한 KB국민은행의 해외실적이 전체 영업순익을 올려 KB금융의 리딩뱅크 탈환에 한발 다가서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본다.


신한금융이 KB금융보다 수익성에서 앞선 것은 2008년, 신한은행이 KB국민은행보다 수익을 더 낸 것은 2010년부터다. 그러나 지난해 KB국민은행이 964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신한은행을 맹추격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순익은 지난해 대규모로 시행한 명예퇴직으로 일회성 비용 8000억원가량이 반영된 것으로 이를 고려하면 KB국민은행의 순이익은 사실상 1조7643억원으로 전년대비 57.42% 늘어난 셈이다. 신한은행의 지난해 순익은 1조9403억원으로 KB국민은행과 1400억원 차이에 불과하다.

우리은행도 베트남 현지법인 전환과 기업금융, 핀테크를 강점으로 영업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우리은행은 과점주주로 참여한 한화생명의 베트남법인과 제휴해 방카슈랑스 판매를 확대할 방침이다.

은행 관계자는 “저금리로 은행 예대마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시중은행의 동남아 점포 실적은 금융지주의 순위경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연초 윤종규 KB국민은행장,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이 베트남을 찾은 것도 해외에서의 수익성 확보가 은행의 핵심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머니S토리] 은행권 해외진출 달라졌다

◆‘핀텐츠’ 사업모델 발굴해야

문제는 동남아금융시장에 거는 기대만큼 리스크도 크다는 점이다. 동남아 국가의 금융산업 성숙도는 중국보다 낮은 상황. 더욱이 사드처럼 정치문제가 불거지거나 금융부채의 질이 떨어질 경우 해외점포들의 실적개선은 점치기 어렵다. 나아가 환율이 수시로 요동치는 상황에서 점포설립에 막대한 자본금을 투입하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마저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요인이 된다.

은행들이 해외에 법인을 세우려면 주로 현지통화로 자본금을 내야 하는데 베트남을 포함한 미얀마 등 신흥국 환율시장은 다른 지역보다 불안정하다. 국제시장에서 현지통화 가치가 요동칠 경우 법인에서 이익이 발생해도 BIS비율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불안정한 환율을 피하기 위해선 현지통화를 비교적 안정적인 달러로 바꾸는 ‘환헤지’ 방법을 사용하면 되지만 신흥국 통화는 거래시장이 많지 않아 수수료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따라서 일부 은행은 자본금을 달러로 바꾸지 않고 현지통화로 투입해 BIS비율 하락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시중은행이 동남아시장 진출 시 오프라인 점포설립보다 ‘핀텐츠(핀테크+콘텐츠)’ 사업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온라인·모바일뱅킹을 통해 신용카드·대출 등 금융서비스와 현지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한류·패션·문화 등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식이다.

신한은행의 써니뱅크 베트남은 기본적인 인터넷뱅킹 서비스에 자동차 딜러가 모바일 앱을 이용해 자동차 구매 고객의 대출을 신청, 접수하는 ‘써니뱅크 마이카(MyCar) 서비스’를 선보였다.

우리은행은 현재 구축 중인 글로벌 위비뱅크에 한류 콘텐츠 및 케이팝 음원서비스를 탑재해 중동 등 해외 모바일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한류가수의 인기곡을 포함해 한류드라마, 연예 관련 기사, 스타일(패션), 먹거리, 맛집 레시피 등 동남아 금융고객에게 한류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수년간 은행들이 중국 및 동남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해외를 공략했지만 이제는 네트워크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내실을 다지는 성장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비은행금융회사와 제휴하고 디지털뱅킹과 결합한 소매금융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