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수업을 감상할 계획이 있거나 관련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은 ‘뒤로 가기’를 권합니다. <편집자 주>


인간수업의 주요 인물들. 왼쪽부터 김동희, 박주현, 정다빈, 남윤수. /사진=인간수업 방송 캡처
인간수업의 주요 인물들. 왼쪽부터 김동희, 박주현, 정다빈, 남윤수. /사진=인간수업 방송 캡처
우정, 갈등, 성장, 로맨스, 화해. 보통의 국내 학원물이 답습하는 ‘키워드’다. ‘왕따’, ‘학원폭력’ 등 청소년이 겪는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구성원간 이해와 성장을 이야기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이 처음 공개될 때만 해도 보통의 학원물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뒤따랐다.

지난달 29일 론칭한 인간수업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민감하고 아슬아슬한 소재를 꺼내들었다.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 방과후 청소년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였고 그의 정체를 알게 된 친구는 동업을 제안하는 등의 파격적인 설정이다. 최근 n번방 사태로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가담자들 가운데 청소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실 세태를 비판하는 이미지로 비쳐졌지만 그 이면을 보면 ‘죄의식’이 본질이다. 정체를 숨긴 채 악행을 저질렀던 극악무도한 범죄 행태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인간수업을 제대로 보지 않은 몽상가들에 지나지 않는다. 

선악 구도? 모두가 빌런이다

인간수업은 ‘오지수’(김동희 분)라는 인물의 변화를 담담하게 그린다. 순수했던 소년이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점차 타락하는 과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성매매를 알선하는 오지수를 보여준다. ‘배규리’(김주현 분)와 엮여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무엇인가 잘못됨을 깨닫는 감정적 변화를 짚어낸다.


오지수의 이중생활을 알게 된 배규리는 판을 키우려다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키는 인물로 그려졌다. 여학생을 알선하는 성매매에 아이돌 남자 연습생을 끼워 넣음으로써 최악의 사태를 만드는 장본인이 된다. 부모의 과도한 집착을 견디지 못한 탈선임을 강조하지만 결국은 범죄자일 뿐이다.

청소년이 등장하는 범죄물의 경우 주변 어른들이 서사의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모방 범죄 등을 예방하는 한편 극의 끝맺음을 위한 장치로 경찰, 선생님, 범죄자가 각각의 비중 안에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이실장 역으로 등장하는 최민수의 존재감은 인간수업의 무게감을 지탱해준다. /사진=인간수업 방송 캡처
이실장 역으로 등장하는 최민수의 존재감은 인간수업의 무게감을 지탱해준다. /사진=인간수업 방송 캡처
반면 인간수업에 등장하는 이른바 ‘어른’의 역할은 미미하다. 담임 선생님(박혁권 분)이 사회문제연구소라는 동아리를 운영하고 오지수, 배규리, 서민희 등 주요 인물과 접촉하지만 책임자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학교 전담 경찰로 등장하는 혜경(김여진 분)이 사건을 깊숙하게 파헤치려 하지만 그마저도 큰 소득을 거두지 못한다.

오히려 오지수의 성매매 사업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는 이실장(최민수 분)과 모두를 위기에 빠뜨리는 건달 류대열(임기홍 분)의 존재감이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류대열은 오지수를 압박해 그의 사업과 이권을 가로채기 위해 살해 협박 등을 일삼는 한편 배규리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극 후반부 최고 빌런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위기에 몰리는 오지수가 안쓰럽지 않은 이유는 원죄의 무게가 감당키 어려울 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죄의 무게,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넷플릭스의 의도는 무엇일까. 흔히 범죄물을 제작할 때는 모방범죄의 위험성을 십분 감안해야 한다. 인간수업 역시 에피소드가 끝날 때 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알고 계시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세요’라는 문구 및 1388 청소년 상담센터 번호를 내보내고 있다.


인간수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죄’의 무게는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민희(정다빈 분, 왼쪽)와 오지수(김동희 분). /사진=넷플릭스
서민희(정다빈 분, 왼쪽)와 오지수(김동희 분). /사진=넷플릭스
경호업체를 자처하며 자신의 죄를 합리화한 오지수는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 하는 위기를 맞는다. 호기심으로 출발한 배규리의 무모한 동업은 결국 막대한 손해와 부상만 남긴 채 끝났고 오지수의 돈을 훔쳐 달아난 그의 아버지는 6000만원을 모두 탕진한다.

성매매 조직에 가담했던 이실장은 끝내 동종업계 건달과의 사투 끝에 숨진다. 조건만남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던 서민희(정다빈 분)도 결국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며 나이를 불문하고 죄 지은 자 모두 최악의 상황과 직면한다.

최근 청소년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가해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인간수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청소년을 정신적으로 미성숙해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지능적이고 계산에 따라 언제든 이해관계를 져버릴 수 있는 비정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부터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한 것으로 분석된다.

흩뿌려진 떡밥, 시즌2도 가능할까

에피소드 10회 분량으로 구성된 인간수업은 다소 열린 결말을 보여주며 차기 시즌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남겨진 떡밥도 상당한 편이다.

먼저 오지수, 배규리, 서민희, 곽기태(남윤수 분)의 생사가 밝혀지지 않았다. 오지수는 곽기태가 찌른 가위에 피를 흘리며 큰 부상을 입었고 배규리의 부축을 받은 채 이동했다. 서민희는 오지수의 정체를 밝히려다 계단에서 떠밀려 중태에 빠졌으며 곽기태의 경우 오지수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배규리로 인해 후두부 부상을 입었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온전히 멀쩡한 것은 배규리 뿐이다.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룰 경우 상대적으로 주변인물인 서민희와 곽기태는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극을 주도하는 김동희와 박주현. /사진=넷플릭스
극을 주도하는 김동희와 박주현. /사진=넷플릭스
자주 등장했지만 좀처럼 부각되지 않았던 연예기획사 대표의 부적절한 행동은 시즌2가 학교를 벗어나 연예계를 다룰 여지를 남겼다. 배규리의 부모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며 더 큰 업체의 대표를 통해 투자를 받아 사업을 확장했다. 배규리가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투자자를 만나러 갔을 당시 한 연예기획사 대표가 그녀의 손을 오래동안 강제로 잡으며 스킨십한 것, 아이돌 연습생이 생계를 핑계로 성매매에 가담한 점 등을 들어 연예계로 세계관을 확장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호주 시드니로 떠났다는 설정에 변주를 준다면 배규리의 복귀와 함께 달라진 오지수의 모습도 표현 가능하다.

이실장과 오지수의 인연도 프리퀄 형태로 공개될 수 있다. 오지수가 맞고 있을 때 한 노숙인이 등장해 그를 구한 장면이 짧게 등장했다. ‘댕댕이’ 시스템 안에서 해결사 역할을 했던 이실장이 당시의 노숙인이었다.

극의 비중은 사실상 오지수와 배규리가 주도한다. 인간수업 공개 당시 과거 베스킨라빈스 마스코트로 잘 알려졌던 정다빈이 화제를 모았고 포스터 타이틀에도 두 번째로 등장했지만 전체 스토리에서는 배규리의 역할이 막중하다. 동업자로 끼어들며 오지수를 둘러싼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며 극 후반부 잠시 자리를 비우는 듯 했으나 결국 엔딩을 장식하는 것도 배규리의 몫이었다. 물론 서민희 역을 맡은 정다빈의 연기력도 훌륭했고 곽기태 역의 남윤수 역시 극에 잘 어울렸지만 김동희와 박주현의 존재감은 극 전체를 좌우한다. 전혀 다른 내용의 시즌2가 아니라면 김동희와 박주현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