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경제학] ②재난지원금 기부를 왜 해?
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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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쇼크로 각국 경제가 휘청인다. 빈곤의 사슬은 저소득층,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사회의 취약한 고리부터 끊어냈다. 재난지원금은 취약계층 구제가 목적이지만 소비 진작의 효과도 크다. 하지만 처음 시행하는 정책이다 보니 곳곳에서 혼선이 생겼다. 골목경제를 살린다는 재난지원금이 일부 대형 프랜차이즈 등에서 사용됐다. 기부 논란도 한창이다. 가족 간 갈등을 빚거나 재난지원금 신청 과정에 실수로 한 기부가 대규모 환불 사태를 일으켰다. 전국민이 행복할 줄 알았던 재난지원금. 당분간의 시행착오가 불가피해 보인다.(편집자주)
[MoneyS Report] 재난지원금 경제학-②기부 논란
“기부하고 싶은데 집사람이 안된다고 해서 생활비로 쓰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좋은 일 하는데 자영업자 살리자는 돈을 꼭 기부해야 하나요?”
소상공인 살리기냐, 노블레스 오블리주냐. 정부가 전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의 기부 논쟁이 한창이다. 정부는 당초 국민 중 소득 하위 70%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소득 상위 30%의 하위구간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자 결국 일괄지급 후 연말 기부금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치권 일부에서 시작된 ‘재난지원금 기부 캠페인’이 정부와 대기업 고위층 등으로 확산되며 이번에는 고소득자의 강제 기부에 대한 논란이 고개를 들었다. 캠페인에 떠밀려 기부에 동참한 고소득자의 솔직한 마음은 무엇일까. 4인가구 이상 최대 100만원인 재난지원금은 수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들이 볼 때 많지 않은 금액일 수 있다.
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해 공과금도 못 내는 자영업자에겐 생계가 걸린 돈일 수도 있다. 이번 재난지원금의 목적이 소상공인 살리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용하는 게 취지에 맞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마트 등에서 소비돼 명분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난지원금 기부가 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적절히 사용되는지도 논쟁거리다. ‘머니S’는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와 관련, 지난 8~12일 국내 기업체와 정부, 공공기관 임직원 235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을 진행했다.
기업 간부와 임원들은 재난지원금 사용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 ‘부인이 경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같은 이유로 일부에선 “재난지원금을 생활비로 쓰고 받은 액수만큼 따로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응답자도 있다.
기부를 선택한 간부·임원 중엔 회사의 강제적 기부 캠페인 때문이라고 답한 이도 있다. 금융그룹 간부 A씨는 “자발적인 기부 동참이라고 해도 연말 소득공제 때문에 사실상 기부 여부를 숨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사람이 공공의 이익과 재정을 튼튼히 하는 데 기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는 평소 고소득자의 높은 세금에 대해 기부라는 인식이 없고 노후 공적연금에 대한 보상도 취약해 반감이 든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재난지원금이 기부되면 사회보험제도인 실업급여의 재원이 된다. ‘고용보험법’에 따른 고용보험기금으로 편입돼 미래의 고용안정에 쓰일 수 있다. 문제는 기부금이 증가해도 실업급여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기부금이 당장 생계가 막막한 실업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건 아니어서 소비 증가의 효과가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B씨(38)는 “월급에서 고용보험료 내는 걸 기부라고 안 하듯 재난지원금 기부는 고용보험료를 추가로 더 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가 기부다. 재난지원금 기부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부가 늘어나면 지난해 말 2조2000억원 규모로 증가한 고용보험기금의 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란 의견이다. 고용보험 적자는 결국 근로자가 내는 고용보험료를 올려 메워야 할 돈이다.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소득 보전과 경기부양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재난지원금을 소비하는 것이 더 ‘착한 사용’일까. 고용보험 적자를 줄이는 것과 당장 생계 곤란에 빠진 소상공인을 구조하는 것 모두 의미가 있다. 일각에선 재난지원금 기부를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과 비유하고 한다. 하지만 기부가 늘어나도 나랏빚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정부는 이번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3조4000억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난지원금을 고용보험으로 편입하는 것을 ‘착한 기부’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재난지원금 사용은 개개인의 가치판단에 있어 옳고 그름을 얘기할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선택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5호(2020년 5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MoneyS Report] 재난지원금 경제학-②기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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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의 목적이 소상공인 살리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용하는 게 취지에 맞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마트 등에서 소비돼 명분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난지원금 기부가 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적절히 사용되는지도 논쟁거리다. /사진=머니투데이 |
“기부하고 싶은데 집사람이 안된다고 해서 생활비로 쓰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좋은 일 하는데 자영업자 살리자는 돈을 꼭 기부해야 하나요?”
소상공인 살리기냐, 노블레스 오블리주냐. 정부가 전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의 기부 논쟁이 한창이다. 정부는 당초 국민 중 소득 하위 70%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소득 상위 30%의 하위구간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자 결국 일괄지급 후 연말 기부금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치권 일부에서 시작된 ‘재난지원금 기부 캠페인’이 정부와 대기업 고위층 등으로 확산되며 이번에는 고소득자의 강제 기부에 대한 논란이 고개를 들었다. 캠페인에 떠밀려 기부에 동참한 고소득자의 솔직한 마음은 무엇일까. 4인가구 이상 최대 100만원인 재난지원금은 수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들이 볼 때 많지 않은 금액일 수 있다.
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해 공과금도 못 내는 자영업자에겐 생계가 걸린 돈일 수도 있다. 이번 재난지원금의 목적이 소상공인 살리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용하는 게 취지에 맞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마트 등에서 소비돼 명분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난지원금 기부가 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적절히 사용되는지도 논쟁거리다. ‘머니S’는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와 관련, 지난 8~12일 국내 기업체와 정부, 공공기관 임직원 235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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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은옥 디자인기자 |
[설문] 긴급재난지원금,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응답자 정보 :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정부·공공기관 임직원 235명)▶20대(2명·0.8%) 30대(122명·51.9%) 40대(65명·27.7%) 50대(43명·18.3%) 60대 이상(3명·1.3%) 남(177명·75.3%) 여(58명·24.7%) 간부·임원(50명·21.3%)▶①전액 사용(194명·82.6%) ②전액 기부(24명·10.2%) ③일부 기부(17명·7.2%)
설문 결과 응답자의 82.6%(194명)가 재난지원금을 전액 사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전액 기부한다는 응답은 10.2%(24명)였고 7.2%(17명)는 일부 금액을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설문에는 기업체 임원과 부장급 이상 간부, 중앙·지방정부 국장급 이상 고위공직자 등 50명도 참여했는데 이들 중 재난지원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20.0%인 10명이었다.기업 간부와 임원들은 재난지원금 사용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 ‘부인이 경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같은 이유로 일부에선 “재난지원금을 생활비로 쓰고 받은 액수만큼 따로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응답자도 있다.
기부를 선택한 간부·임원 중엔 회사의 강제적 기부 캠페인 때문이라고 답한 이도 있다. 금융그룹 간부 A씨는 “자발적인 기부 동참이라고 해도 연말 소득공제 때문에 사실상 기부 여부를 숨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사람이 공공의 이익과 재정을 튼튼히 하는 데 기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는 평소 고소득자의 높은 세금에 대해 기부라는 인식이 없고 노후 공적연금에 대한 보상도 취약해 반감이 든다”고 비판했다.
재난지원금 착한 소비? 착한 기부?
물론 재난지원금 기부가 선의라는 점을 의심할 순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도움이 안될 것이란 지적도 많다. 재난지원금은 정부가 가계소득을 지원하는 ‘이전지출’의 일종으로, 이것이 소비로 이어져야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불황의 최대 취약한 고리인 자영업 살리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반대로 재난지원금이 기부되면 사회보험제도인 실업급여의 재원이 된다. ‘고용보험법’에 따른 고용보험기금으로 편입돼 미래의 고용안정에 쓰일 수 있다. 문제는 기부금이 증가해도 실업급여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기부금이 당장 생계가 막막한 실업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건 아니어서 소비 증가의 효과가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B씨(38)는 “월급에서 고용보험료 내는 걸 기부라고 안 하듯 재난지원금 기부는 고용보험료를 추가로 더 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가 기부다. 재난지원금 기부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부가 늘어나면 지난해 말 2조2000억원 규모로 증가한 고용보험기금의 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란 의견이다. 고용보험 적자는 결국 근로자가 내는 고용보험료를 올려 메워야 할 돈이다.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소득 보전과 경기부양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재난지원금을 소비하는 것이 더 ‘착한 사용’일까. 고용보험 적자를 줄이는 것과 당장 생계 곤란에 빠진 소상공인을 구조하는 것 모두 의미가 있다. 일각에선 재난지원금 기부를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과 비유하고 한다. 하지만 기부가 늘어나도 나랏빚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정부는 이번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3조4000억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난지원금을 고용보험으로 편입하는 것을 ‘착한 기부’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재난지원금 사용은 개개인의 가치판단에 있어 옳고 그름을 얘기할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선택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5호(2020년 5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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