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처음으로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서 '괜찮냐'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퇴근길에 들른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어느 직원에게 무심코 안부인사를 건네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러고 보니 마침 며칠 전이 어버이날이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4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후 태풍의 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해당 직원은 "월급 잘 나와요, 걱정 마세요"라는 말로 안심시켜 드리고 전화를 끊은 후에 문득 불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들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대형마트에 다닌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던 어머니였다. 홈플러스가 회생절차에 들어갔다는 뉴스에 걱정하면서도 안 그래도 힘들 아들 마음이 더 다칠까 봐 전화도 망설였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당당치킨 언제 나오냐고 묻던 지인들이 요즘은 월급은 제대로 나오냐고 묻습니다. 언젠가는 회사가 정상화될 거라는 믿음으로 매일매일을 버티지만 20년 가까이 다닌 회사가 곧 망하는 게 아닐지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비단 그 직원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2만 홈플러스 직원과 거래처 직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 등 10만명이 모두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MBK파트너스(MBK)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쓰면서도 속으로는 홈플러스를 응원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일하는 당사자를 마주하자 힘내라는 말조차 쉽사리 건넬 수 없었다. 곧 회사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그의 기대와 달리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다.


국회에서는 대주주를 상대로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이어 검찰이 홈플러스 본사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주주와 회사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과오가 명명백백하다면 대주주인 MBK도 홈플러스 사측도 책임을 져야 한다.

홈플러스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10만명은 잘못이 없다. 그저 열심히 일한 것뿐인데 어쩌다가 매일 뉴스를 새로고침하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걸까. 하루라도 빨리 이들의 일상을 회생절차 개시 이전으로 돌려놔야 한다. 불안감에 밤을 새우다가 조심스레 하는 어머니의 전화가 아닌, 손주들 데리고 언제 내려오느냐는 전화가 오도록 말이다.


이번주 대선 레이스가 본격 가동됐다. 대통령 후보들이 민생경제와 내수소비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공약을 내놓는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홈플러스를 정상화하는 일에도 역량을 모아야 한다. 홈플러스가 회생에 실패하면 10만명의 생계는 물론 금융사, 거래처, 홈플러스를 찾는 고객들까지 손실과 불편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홈플러스를 살리기 위한 움직임도 시작됐다. 여러 커뮤니티와 SNS에서 '홈플러스를 살리기 위해 장 보는 횟수를 늘렸다' '오랜만에 홈플러스를 방문하겠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객들이 먼저 홈플러스를 살리기 위해 앞장선 것이다. 경쟁업체들도 홈플러스가 다시 회생하는 것이 국내 유통산업과 경기 회복에 필요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매일 출근해서 일하고, 때가 되면 부모님 찾아뵙고 용돈도 드리고, 가끔 가족과 여행도 다니는 당연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그 직원의 바람이 혼잣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