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때 찬란했던 한국 영화계가 양적, 질적 모두에서 큰 위기에 빠진 모습이다. 극장을 찾는 관객은 현저히 줄었고, 해외 영화제 수상 소식도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있다. 올 들어 5월 중순까지 300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는 단 1편뿐이다. K무비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탔던 칸 국제영화제에서 올해까지 최근 3년 연속, 경쟁 부문에 단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뉴스1은 총 5편의 기획 시리즈 [위기탈출 K무비]를 통해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해결 방안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봉준호 (왼쪽)과 박찬욱 감독 / 뉴스1 DB


(서울=뉴스1) 정유진 장아름 고승아 기자 = 한국 장편영화는 지난 13일 개막한 제78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섹션에 한 편도 초청받지 못했다.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받은 단편 영화 '첫여름'(감독 허가영)을 제외하고는 칸의 모든 공식 섹션에서 한국 영화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 장편영화는 지난 2023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하지 못했기에, 국내 영화계는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이는 표면적으로 침체기에 들어선 국내 영화 시장의 상황을 방증하면서, 한편으로는 실력 있는 신인 감독이 지속해서 배출되고 성장하기 어려운 영화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재고하게 만든다.

◇ 칸 영화제 초청작 감소,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들어 한국영화계에서는 다양한 장르와 성향의 작품 및 연출자가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 심화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는 한국영화의 질적 발전이 더딤을 알게 하는 대목 중 하나다. 대중의 입장에서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분명 질적인 문제와 연결 지을 수 있다.

물론 다수의 영화 전문가들은 칸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가 줄어든 것은, 국내 영화계의 전체적 질적 수준 하락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박찬욱 봉준호 등 칸 영화제에 자주 초청돼 왔던 유명 감독들의 신작이 시기상 출품되기 어려웠고, 절대적으로 한국 영화 편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팬데믹 이전부터 지적돼 왔던 유망한 차세대 감독의 부재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선 고민해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작가주의 감독들의 뒤를 이을 만한 감독들, 이른바 '포스트 봉준호 박찬욱'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의 실력파 연출가자 칸 국제영화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최근 씨네큐브 25주년 기념 특별전에 맞춰 내한한 자리에서 한국영화의 위기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은 계속 위기였다, (다만) 좋게도 나쁘게도 일본은 변화가 상당히 느린 편이라 작은 극장들이 남아있고, 한꺼번에 모두가 OTT로 휩쓸려가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극장용 영화를 고집하는 사람도 일정 수 있고 그래서 젊은 작가들도 남아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젊은 감독으로는 윤가은 감독이나 '벌새'의 김보라 감독 같은 여성 감독의 작품을 좋게 봤고 그들의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올까 지켜봤는데 왜 안 나오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했다.


칸 영화제 ⓒ AFP=뉴스1


◇ 포스트 봉준호 박찬욱이 안 나온다? "사람 아닌 구조의 문제"

한국영화계도 앞날이 기대되는 젊은 감독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상업영화에만 투자가 몰린 점,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를 통해 주목받았던 감독들마저도 상업영화 시장에 데뷔한 뒤에는 자본논리에 의해 자기 색깔을 빼고 타협하면서 실험적이고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기 어려워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감독 A 씨는 "새로운 작품을 못 쓰는 게 아니다, 시나리오를 가지고 투자배급사의 피드백을 받으면 한결같은 답이 온다, 기존의 잘 된 영화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도전은 하지 않고 답습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창작자로서의 고충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해는 한다, 1억~2억도 아니고 몇십억이다, 내가 제작한다고 해도 모험할 수 있을까 싶다, 쉽지 않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이 구조가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기에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김지운 임상수 장준환 등의 돋보이는 감독들이 다수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기업이 아직 영화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기 전이었고, 제작자는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제작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시각에 기반에 실험적인 작품에 도전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재능있고 개성 있는 신인 감독들이 발굴됐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위력을 발휘하기 전, 제작자들은 '끼워팔기'(흥행이 될 만한 영화와 함께 저예산이나 인기가 없을 만한 영화를 같이 묶어서 판매하는)를 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방식이 가져온 폐해도 있었기에 무조건 옹호하기만은 어렵다. 다만 '끼워팔기'의 장점은 다양한 감독들의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당대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화산고'에 '끼워팔기'로 얹혀 팔린 작품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중요한 것은 실험적인 '플란다스의 개'로 봉준호 감독이 데뷔할 수 있었고, 흥행작인 '살인의 추억'도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국내 한 제작사 대표 B 씨는 "90년대에는 제작자의 힘이 컸지만 지금은 (자본의 힘이 워낙 커서) 제작자가 힘이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 제작자가 힘이 없는데 어떻게 감독을 발굴하나"라며 "제작자는 감독을 발굴해야 하고 감독은 신인 배우를 발굴하는 것이 선순환 구조인데 지금은 그런 구조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포스트 봉준호, 박찬욱이 나오려면 독립영화를 하는 감독들이 많이 커야 한다"고 덧붙였다.

'플란다스의 개' 포스터


◇ 선순환 이루려면

90년대와 비교할 때 비약적으로 몸집이 커져 버린 지금의 영화 시장에서 자본의 중요성은 더 강조된다. 그 때문에 마냥 과거와 같은 구조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작지만,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들이 창작될 수 있는 계기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독립영화를 만드는 제작자 및 창작자들이 정부 예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찬일 평론가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이 상업영화가 아닌 작은 영화들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도 저예산 독립영화를 안 찾아본다, 전문가들이 주목하지 않으니 일반 관객들도 볼 리가 없다, 우리 전문가들이 주목하지 않는데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해 주겠느냐"며 "우리 영화가 부족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더 열심히 찾아봐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영화시장이 끝나 버릴 것이라는 비관론도 존재한다. A 씨는 "10년 전 활동한 감독님들이 아주 부럽다, 나는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도 간당간당하다, 밑의 세대에게 영화를 하라고 말할 수 없다"며 "솔직히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직 재밌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으니 여전히 희망을 품고는 있다, 재밌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한국 영화의 전성기는 또 올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