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⑮50년 내다본 과감한 유치전략과 인력 양성...5만개 바이오 일자리 만들어
[아일랜드는 섬이 아니었다] 글로벌 15대 제약사 중 14곳이 모인 '유럽의 바이오 수도'
더블린=최유빈,
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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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저성장과 산업 전환의 갈림길에 선 한국 경제가 해법을 찾지 못하는 사이, 인구 530만의 아일랜드는 개방과 혁신 전략으로 유럽의 '작은 호랑이'(Celtic Tiger)로 부상했다. 낮은 법인세를 축으로 한 외국인 투자 유치, 토종기업을 세계무대에 올려세운 스타트업 지원, 노사정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 모델 등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성장의 3대 동력'으로 꼽힌다. 글로벌 빅테크와 제약 기업들이 몰린 더블린의 산업 클러스터는 한국이 직면한 저성장·고비용 구조를 돌파할 대안으로 주목된다. 아일랜드 경제 기적의 현장에서 위기의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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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Pfizer), MSD(Merck Sharp & Dohme), 노바티스(Novartis),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사노피(Sanofi)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앞다퉈 생산시설과 연구거점을 설치한 나라가 있다. 바로 아일랜드다. 현재 아일랜드에는 글로벌 상위 15대 제약사 가운데 14곳이 진출해 있으며 90개가 넘는 다국적 제약사가 활동 중이다.
이들 글로벌 기업들은 더블린과 코크, 슬라이고 등지에서 항암제와 백신, 바이오의약품을 만들어 전 세계로 수출한다. 덕분에 아일랜드는 이제 유럽의 작은 초록 섬이 아니라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을 이끄는 강국'으로 불린다.
수출 45% 견인하는 국가 핵심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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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 산업은 아일랜드 수출을 견인하는 국가 동력이 됐다. 중앙통계청(CSO)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 및 의약품 수출액은 999억유로(약 165조원)에 이르며 이는 전체 수출의 약 45%를 차지한다. 아일랜드가 세계 3대 의약품 수출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아일랜드는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메드트로닉(Medtronic), 애보트(Abbott), 보스턴사이언티픽(Boston Scientific) 등 글로벌 빅3 의료기기 기업이 아일랜드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의료기기 수출액은 138억유로(약 23조원)에 달해 유럽 2위를 기록했다. 대표 제품인 심혈관용 스텐트(심장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혔을 때 혈관을 넓히는 의료용 금속망)는 세계 시장의 80%를 점유한다. 전 세계 병원에서 쓰이는 인공호흡기의 절반 또한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다.
이머 오리어리 아일랜드 제약의료협회(IPHA) 홍보·대외협력 이사는 "수십년 동안 전 세계에서 아일랜드의 제약과 바이오 의약품 제조,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전국 사업장에서 5만개의 직접 일자리를 창출해 세계 시장에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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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아일랜드는 글로벌 백신 생산의 전초기지가 됐다. 코크의 화이자 공장에서는 mRNA 백신 원료가 쏟아져 나왔고 MSD의 칼로우와 브린나 시설에서는 각종 백신과 바이오의약품이 끊임없이 생산됐다. 이렇게 탄생한 의약품은 바다를 건너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인류의 집단 면역을 지탱하는 숨은 동력이 됐다.
아일랜드는 단순한 생산기지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의약품 제조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제약 공장만 50곳에 달하며 유럽의약품청(EMA)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하는 글로벌 생산시설도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반세기 설계의 힘… 과감한 유치 전략과 인재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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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바이오 산업 육성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일랜드는 제약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보고 과감한 유치 전략을 펼쳤다. 법인세율 0%, 공장 부지 무상 제공 같은 파격 조건을 내세워 해외직접투자(FDI)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1958년 레오 파마(Leo Pharma)를 시작으로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 화이자, MSD, 일라이 릴리(Eli Lilly), 얀센(Janssen)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아일랜드로 몰려들었다. 이 시기의 과감한 선택이 오늘날 아일랜드가 세계적인 제약·바이오 허브로 성장하는 초석이 됐다.
오리어리 이사는 "지난 50년 동안 국제 투자에 대한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어 왔다"며 "아일랜드 성공의 추가적인 동력은 정치적 안정성과 산업이 운영되는 고도로 규제된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세제 혜택을 기업 유치를 위한 강력한 무기로 활용했다. 지식재산권(IP) 수익에 대한 세금 부담을 절반으로 줄여 세율을 6.25%까지 낮추는 '지식개발박스'(Knowledge Development Box·KDB) 제도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 12.5%의 영업비용 공제와 별개로 연구개발(R&D) 지출액의 30%를 법인세에서 추가 공제해주며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박선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런던무역관 연구원은 "아일랜드는 법인세 실효세율을 6.25%까지 낮췄고 자격을 갖춘 연구 개발에 대해 R&D 세금 크레딧 형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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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양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아일랜드에는 바이오 공장 운영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부족해 미국에서 인력을 수입해야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2011년 약 5800만유로를 투입해 국립 바이오전문인력양성센터(NIBRT)를 설립했다. 기초과학부터 임상시험, 생산, 품질관리, 인허가까지 전 과정을 교육하는 이 기관은 매년 4000명 이상의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아일랜드의 젊은 노동력과 전문 인력을 양성하려는 정부의 노력 또한 글로벌 기업을 끌어당기는 하나의 원인"이라며 "지원 정책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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