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청년보고서] ‘노오력’ 해도 안되는 N포세대
허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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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년들이 자신이 태어났고,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나라에 대해 ‘헬(Hell) 조선’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지 오래다. 또한 이들이 속한 2030세대는 스스로를 N포세대라 부르기도 한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꿈, 희망 등 삶의 모든 가치를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다. 청년들의 좌절과 절망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각한 구조적 문제
<머니S>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호 변경을 앞두고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본지와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청년들은 ‘노오력’(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의미하는 신조어)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구직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취업문턱 자체가 높다’는 응답이 36%로 가장 많았으며 구직 실패 이유에 대한 질의에는 ‘스펙부족’(32%)보다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48%로 훨씬 더 많았다(고용시장 불안 27%+잘못된 고용정책 21%).
청년고용문제와 관련해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항을 묻는 질문에는 ‘낮은 임금과 소득 불평등’(42%), ‘기업이익에 치중한 정책’(22%) 등 고용시스템 개선을 촉구하는 의견이 64%로 과반을 훌쩍 넘었다.
당사자들의 하소연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에는 실제로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통계청이 집계한 6월 청년실업률은 10.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청년 고용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이 34%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해외로 시선을 돌려봐도 문제는 자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은 가장 길고 수면시간은 가장 짧은 나라, 아동과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은 최저 수준인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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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해결방안 을 함께 모색하는 청년과 기업CEO 만남의 장에서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
◆“한국사회 기본 설계 바꿔야”
최근 몇년 사이 청년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도 해결책 마련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문제는 정부의 개선책에 대한 청년들의 체감효과가 낮다는 것.
이를테면 지난달 18일 고용노동부는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 ▲노동시장 제도·관행 개선 ▲고용서비스 혁신을 골자로 하는 하반기 고용노동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처럼 고용확대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거나 관행을 바꾸겠다는 방식은 청년들이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벼랑으로 내몰린 청년들의 마지막 방주’라 불리는 청년수당 직접 지급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이견으로 실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앞서 서울시는 사회참여 의지가 있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매월 50만원씩 최장 6개월까지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1년 이상 서울시에 거주한 만 19~29세 미취업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1~15일까지 지원자 3000명을 모집했다.
그 결과 대상 규모의 두배가 넘는 6309명의 청년이 지원하며 청년수당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증명했다. 서울시는 심사를 거쳐 이달 초 최종 3000명을 선발해 청년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지자체의 맏형격인 서울시가 시행하는 청년수당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다른 지자체로의 확산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서울시가 사업을 강행하면 사회보장기본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직권취소’ 등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복지부가 직권취소 처분을 내리면 서울시도 법적 대응할 방침이지만 이 과정에서 청년들에 대한 직접 지원책은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청년수당 지급 문제를 놓고 일부 청년에 한정된 지원, 사용처를 확인하기 힘든 현금 지급은 문제라는 비판과 청년들이 구직활동을 하는 데 드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할 최소한의 묘책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는 가운데 결국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 구조적인 개선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확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학자 조한혜정, 엄기호 등이 1년가량 토론, 심층인터뷰, 세미나 등으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뒤 펴낸 <노오력의 배신 : 청년을 거부하는 국가 사회를 거부하는 청년>에서 저자들은 “청년문제를 청년만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며 “청년들이 만든 신조어로부터 청년문제 해결을 넘어 한국사회 기본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상호 서울시의원은 “청년문제의 핵심은 일자리가 확장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라며 “연령대별 학업기, 졸업예정기, 취업기 등 세부적으로 대상을 나눠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 후 정책을 정리해 청년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차원의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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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유예씨(가명)는 한부모가정으로 미성년자 동생이 있다.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교 졸업을 1년 유예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족을 위해 월급을 고스란히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라 무료로 열리는 강연에 참여하며 취업을 준비 중이다. 이렇게 해서 취업이 가능할 지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6309명의 지원자들이 제출한 서울시 청년수당 지원서에 담긴 사례 중 일부다. 서울시가 빅데이터 기반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청년활동지원사업 지원서를 전수조사 및 분석하고 지난달 28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지원동기’ 항목에서 ‘취업’이라는 키워드가 6580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됐다. ▲준비(4321번) ▲아르바이트(2696번) ▲청년(2601번)은 뒤를 이었다.
빅데이터 분석전문가는 “지원자들의 핵심 동기는 ‘취업’이 압도적이지만 취업을 준비하면서 각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고 이는 시간 부족으로 이어져 다시 취업에 실패하는 역설적인 고충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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